본문: 마가복음 14장 32~42절
1. 오늘 본문이 기록된 마가복음 14장은 참 아픈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진리를 외면하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예수님’을 이해합니다. 자신들의 욕심에 따라 ‘예수님’을 배반하고, 이용하는 사람들, 제자들, 그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이려는 자들, 배반하는 자, 부인하는 자, 철없다 말할 만큼 무력한 자들’의 모습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을 읽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 모습 속에서 내가 아니라, 저들만 생각난다면 낭패입니다. 차라리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2. 오늘 읽으신 32~42절에 기록된 ‘겟세마네에의 기도’는 우리의 영적 실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한다고, 기도의 능력?이 있다고, 기도 부탁 좀 받는다고 이 말씀이 나와 상관없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33~36절에 예수님께서 왜 기도하셨는지를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보십시오. 정말 무엇을 기도하셨습니까? 왜 겟세마네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습니까?(마26:39)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까? (눅22:44)
네, “나의 원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우리는 분명이 알아야 합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따라서 사람과 똑같이 ‘희로애락 생노병사’의 모든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끊어짐을 겪는 것이 얼마나 괴롭다는 것을 아십니다.
육체를 가지고 계셨기에 육체의 괴로움이 밀려올 때, 우리와 똑같이 ‘두려움, 공포, 회피’의 마음이 올라오셨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삼위의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랑하는 그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인간의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되지 않는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원의 완성’을 위해 자기를 굴복시키셨습니다. 십자가를 거부하려는 모든 것들을 기도로 끊어 버리셨습니다.
3. 기도는 신령한 영적 능력을 더하기 위한 무속적 수단이 아닙니다. 득도?를 위한 종교 행위도 아닙니다. 간곡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종교 절차도 아닙니다.
타종교, 무속 등에서 말하는 ‘기도’는 그런 것일지 몰라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하신 기도는 절대 그런 류의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자기를 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내 생각을 못 박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엎드려 내 안에서 끝없이 올라오는 ‘자아의 생각, 탐욕에 근거한 바람, 자질구레한 욕심’을 내려놓기 위해 울부짖는 것이 진짜 기도입니다.
고난 주간입니다. 십자가를 묵상하기 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 분의 기도를 배우십시오. 진짜 하나님의 자녀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고백에 동참하게 될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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