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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4월 30일 2020년 목요일 묵상

본문: 에스겔 47장 13~48장 35절

1. 오늘 본문을 끝으로 ‘에스겔’서가 마무리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다시 세우시는 ‘새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로 땅(세상, 창조계)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생명을 되찾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회복된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할 구역이 정해지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 아래 다시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12 지파’의 회복입니다. 솔로몬 왕 이후 남북으로 분열된 이스라엘과 12지파는 무너져 버립니다. 앗수르 제국에 의해 가장 먼저 멸망한 북이스라엘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시피 합니다. ‘남 유다’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남 유다’마저도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역사적으로 ‘남 유다’는 ‘북이스라엘’을 혈통적, 종교적으로 매우 천시, 멸시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회복시키십니다.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은 구별하고, 차별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동등하게 대하십니다. 같은 은혜를 부으셨습니다. 마지막, 48장에는 모든 지파의 회복과 땅분배가 기록됩니다. 출애굽 이후 여호수아서의 기록 그대로 재현됩니다!

2. 어쩌면 오늘 본문은 ‘남유다’의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았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공평한 구원, 죄인에게 허락된 회복’이라는 이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구원과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자신에게만! 자기 유리한 대로만! 이용하려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교회 생활’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다같은 죄인’이라는 마음보다, 나와의 관계 혹은 친분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더 간단하게 말해서 “나에게 잘하는 사람,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 위로?합니다. 반대인 경우는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그것이 결국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은근히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나쁜 일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모든 잣대의 기준이 ‘나’에게 있습니다.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음’에도 자기가 알아서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며 ‘하나님 뜻 팔이?’를 합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이런 ‘자기 이익’에 기반한 ‘자아 중심적 해석’을 버려야 합니다.

3. 새 성전을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남유다, 북이스라엘 모두가 회복됩니다. 12지파가 그대로 회복됩니다. 12지파 모두가 ‘새 성전’을 중심으로 회복된 ‘가나안 땅’에서 땅을 분배 받습니다(48장). 심지어 ‘타국인’에게도 해당 됩니다.(47장 21~23절) 모든 것이 처음 그대로 입니다.

무엇보다 48장 30~36절을 보십시오. 동서남북으로 ‘새 성전’에는 문이 12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방향의 문들의 이름은 ‘세 지파’씩 짝을 이룹니다.

이것은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머물 때 12지파가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거주했던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민수기 2장)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에스겔서의 마지막을 기록하시면서 ‘친히 성전되신 예수님, 온전한, 완전한 성전(성막)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역사 속에서 그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어도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역사의 흐름이 있을지라도 ‘영원히 함께 거주할 성전(성막)’으로 임재하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내 사랑하는 그 분 안에서, 그 분과 함께 ‘영원한 쉼, 휴식,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 때입니다. 공격은 치열합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이럴 때, 세상의 공격보다 더 위험한 내 안의 나태함, 게으름, 두려움, 불안함, 이기심 등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세상의 불안함, 땅의 불공평함’에 마음 빼앗거나 흔들리지 맙시다. 다시, 성령께서 주시는 인내하고, 견디게 하시는 은혜에 이끌림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 머무는 모든 자에게 공평하게 허락될 측량할 수 없는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바라봐야 합니다.

내 ‘영혼의성소’에서 솟아 오르는 생명수, ‘하늘성소’에서 흘러내리는 생명수가 우리 전인격과삶에 흘러 넘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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