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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4월 29일 2021년 목요일 묵상

본문: 출애굽기 14장 1~14절


1.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오르락 내리락, 왔다 갔다’하는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마음이 변한 바로(Pharaoh)와 그의 신하들, 다시 난관에 부딪히자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영화의 예고편 같습니다. 광야 40년 동안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입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불과 3일 전에 유월절과 장자의 죽음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격한 사람들이 맞는지 의심이 듭니다.

2.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모습은 구약시대,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다. 신약시대에 들어와 예수님을 믿는 나는 그렇지 않다.’라는 자기 기만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마음이 변한’ 바로(Pharaoh)와 그의 신하들이 아닙니다. ‘왜 우리가 그들을 놓아 보냈지?’라며 자책 섞인 말을 하며 온 군대를 동원하여 추격하는 그들이 아닙니다. (5~7절)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핵심입니다. 그들이 내뱉은 말, 마음의 상태 등이 중요합니다.


3. 홍해를 마주하고 있는 ‘비하히롯’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합니다. 그들을 추격하는 바로의 군대로 인하여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심지어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습니다. 11~12절은 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남 탓, 비아냥, 자포자기 등 가장 비관적인 인간의 심리 상태를 비뚤어진 감정에 버무려 터뜨린 것입니다. 이 말을 쏟아낼 때 그들의 모습은 예수님을 죽이라는 무리들의 악다구니와 같은 것이었을 겁니다.

죄의 노예, 세상의 노예, 자기 자신의 노예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 분의 명령과 은혜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참 자유를 포기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4.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전차부대’가 쫓아왔기 때문에 불평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해안 길이 아닌, 광야 길로 방향을 틀었을 때 불만이 시작됐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험하고 험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익숙한 길, 내가 편한 길, 내가 원하는 길로 인도함 받지 않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입니다.

광야길로 방향이 전환되는 그 순간부터 불만은 차곡차곡 쌓인 것입니다. 그게 ‘비하히롯’ 앞에서 일차 폭발한 것입니다.

11~12절 앞, 사이사이, 마지막에 “내가 그랬지?! 내가 뭐랬어?! 광야길로 간다고 할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5.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다시 긍휼함으로 대하십니다. 모세를 통해 13~14절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이 모습을 통해 예수님이 떠올라야 합니다. 폭풍 가운데 두려워하는 제자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 바람과 물결을 향해 ‘잠잠하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떠오릅니다. (마태복음 8장, 마가복음 4장, 누가복음 8장) 그리고, 시편 46편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는 말씀은 외적인 상황의 변화(홍해가 갈라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상태, 심령의 상태, 마음의 상태를 향한 선포입니다.

사람이 정해 놓은 생각, 판단, 계획, 비전 등이 뒤틀어질 때 요동치는 인간의 심령을 향한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6.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10가지 재앙의 의미 특히 유월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저 자기 상상과 생각에 맞춘 결과를 꿈꾸며 따라 나왔습니다.

출애굽은 애굽의 종 되었던 삶에서 벗어나 내 맘대로 자유를 누리며 살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은 잘 모릅니다. 내가 원하는 자유를 반납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자유를 얻기 위해 그 분의 언약 안에 갇히기 위해 떠나는 길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아니, 각자가 생각하는 상태의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지긋지긋한 노역대신에 다가올 어떤 유토피아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일에 대한 나의 청사진을 찢어버려야 합니다. 구원 받은 이후에 펼쳐질 일에 대한 그림 마저도 지워야 합니다.

내가 그토록 열심을 다하는 그것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합니다. 열 발자국을 다가갔다면 아홉 발자국 물러야 나야 합니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과 구원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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