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작성자 사진Hyung Yun

4월 29일 2020년 수요일 묵상

본문: 에스겔 47장 1~12절

1. 마른 뼈가 되살아나는 환상과 함께 오늘 본문의 ‘성전에서 솟아 흐르는 물’에 대한 묘사(환상)은 에스겔서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동쪽으로 향한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흐릅니다. 샘의 근원은 ‘성소’라고 12절에 기록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영광이 거하는 ‘성전 내소(지성소)’에서 솟아올라 성전 건물의 지하를 흐르다가 입구(문지방)에서 땅 위로 흐르는 것 입니다.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생수의 근원(예레미야2:13)’이신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에 대한 묘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 살리시는 역사를 ‘강물’에 비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의 그늘 아래 피하는 자는 ‘복락의 강물’을 마실 것이라(시편 36:7~8)”고 말씀합니다. 그 외에 ‘요한계시록 22:1~2’, ‘요엘 3:18’, ‘스가랴 14:8’절 등 정말 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살리시는 은혜’를 ‘생수, 강물’에 비유합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 ‘에스겔 47장’은 ‘살리고, 회복시키는 생명의 강물’이 어디로부터 흘러나오는지를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살리는 과정과 결과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은 점점 커집니다. 3~5절을 보시면 그 과정이 기록됩니다. “천 척(1,000 尺)”에서 ‘척(히브리어: ammah)’은 정확한 단위를 알수 없지만, 대체로 ‘규빗(cubit: 약 50cm)’으로 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이’가 얼마인지가 아닙니다. 측량할 때마다 ‘발목-무릎-허리-헤엄칠 만한 물(건너지 못할 강)’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의 영적인 의미는 이렇습니다. 사람의 의지, 결정, 방법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정말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은 점점 더 깊은 영적인 세계로 인도함 받게 됩니다. 내가 측량할 수도 없고, 예상할 수도 없는 더 깊은 은혜의 강물이 나를 덮습니다. ‘발목에 은혜’의 물이 찰랑일 때는 내 맘대로 신앙생활이 되는 것 같아 즐겁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무릎과 허리’까지 찼을 때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물살에 넘어질 것 같아 불편?하기도 합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싫습니다. 그러나 결국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어 나를 완전히 덮어버리는 ‘생수의 강’에 나를 온전히 맡기게 됩니다.

3 이 모습을 눈을 감고 마음 속으로 그림을 그려보십시오. 7~8절, “강 좌우편에 나무들”을 살릴 만한 큰 강이 되어 흐르려면, 또 이 물이 ‘아라바’로 흘러 들어 ‘그 바다(사해)’의 물이 되살아는 역사가 일어나기 위한 ‘대전제’는 “사람이 능히 건너질 못할 강”에 빠져야 합니다. 그 은혜에 강물에 나를 맡겨야 합니다. 아니, ‘여호와 하나님의 생수의 강’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

에스겔은 ‘점점 차 올라 큰 강’이 된 ‘생수의 강’에 떠내려 가면서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은 것(7절)”을 본 것입니다. ‘아라바’로 흘러가는 물이 ‘그 바다(사해)’를 살리는 것을 봅니다(8절). ‘생물이 살아나고, 고기가 많고, 어부가 있는 것을 봅니다(9~10절). 11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맞춤형? 생명의 역사’를 봅니다. 이 장면은 ‘개펄과 진펄, 소금 땅’이 버려진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원어적인 의미는 ‘개펄과 진펄은 소금 생산을 위해 그대로 둔다는 의미입니다. ‘성소의 물, 생명의 물’이 흘러가 닿은 곳은 ‘풍성한 열매’가 맺히고, ‘잎사귀’는 약의 재료가 된다고 기록합니다.(12절)

4.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소의 물’은 인간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흘러나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에스겔은,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 ‘거룩한 초청’에 응하는 것입니다. 죄인인 나를 십자가에 흐르는 보혈,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께 나아와 값없이 받으라는 초청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 생수를 값없이 마시면 됩니다. (계22:17)

그리고, 더 나아가 ‘생수의 강’에 완전히 빠져야 합니다. 나를 던지기를 결단하십시오. 어정쩡하게 내 자아의 본성으로 살려는 생각을 아예 버려야 합니다. 완전히 죽여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발목을 적시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생수의 강에 완전히 잠기는 것’을 택한 에스겔은 ‘사람이 건널 수 없는(벗어날 수 없는) 강’에 자신을 맡기고, 떠내려갑니다. 맡기고 떠내려가니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모든 것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생명의 역사’를 직접 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살리는 역사를 보고 싶으십니까? 먼저 ‘생수의 강’에 빠지십시오. 완전히 덮이십시오. 나의 죄악, 본성, 자아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에 지워져 버려야 합니다. 장악 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떠내려 갈 수 있습니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은 ‘생명의 역사’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생명의 강’에 완전히 잠겨,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는 ‘영적 목격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조회수 32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entario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