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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4월 28일 2021년 수요일 묵상

본문: 출애굽기 13장 1~22절


1. 오늘 본문에는 유월절의 연장인 무교절에 관한 내용(1~10절)과 처음 태어난 것들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초태생 규례(11~16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7~18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을 가장 가깝고 편하게 갈 수 있는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 아니라, 더 멀고 험한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신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절은 요셉의 유언(창5:25)이 이루어지는 것에 관한 기록입니다. 20~22절은 ‘에담’에서 처음 나타난 구름기둥과 불기둥에 관한 기록입니다.


2. 모든 성경 말씀이 그렇지만, 오늘 본문을 풀어내면 참 많은 묵상, 영적 의미, 영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3~10절에 기록된 무교병(無酵餠, unleavened bread)을 먹는 절기(무교절)에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요? 당연히 ‘급히’입니다. 인간의 시간에서는 400여년을 기다린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시간표에서는 신속한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 출애굽의 대장정이 시작될 때는 ‘급하고 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급하고 강한 바람’이라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기다림이 급함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3.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급한 구원’이 누구를 위해 일어난 것입니까?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네, ‘나’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 날(무교절을 지킬 때)’에 네 아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합니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바로,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입니다. 민족적, 혈통적 공동체가 아닙니다. ‘나’라는 한 개인입니다.

범죄한 인간의 독특한 습성 중의 하나가 ‘숨는 것’입니다. 특히, 무리 속에 숨으려 합니다. 공동체라는 그럴 듯한 용어에 숨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기를 가립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내가 다니는 교회의 어떠함에 숨습니다. 심지어 교회의 이름을 유명상품명처럼 만듭니다. 그리고, 마치 그 상품명(교회 이름) 뒤에 숨습니다. 그 교회에서 행하는 각종 종교 행위 뒤에 숨습니다. (학벌, 명예, 물질 등등을 얻으려는 것도 그 뒤에 자기를 숨기기 위해서 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공동체)에게 무교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각 개인’입니다. 즉, ‘대속의 은혜를 통해 죽을 내가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내가 아닌 예수님께서 살고 계십니다!’라는 영적 유월절을 경험한 개인(나)에게 무교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무교절은 단순히 일 년에 한 번, 칠 일 동안 지키는 종교 절기일 수가 없습니다. 매일이 ‘십자가에서 급하고 강하게 나를 구원하신 은혜를 잊지 않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과 고백에 합당한 삶을 ‘네 아들(자녀, 주변 모든)’에게 보여야 합니다. 보이려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 앞에 있는 ‘급하고 강한 십자가 구원의 능력’과 ‘성경을 통한 영혼 깊은 곳의 음성’에 반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5. 앞서도 말씀 드렸듯이 오늘 본문에는 너무 많은 영적 메시지가 있습니다. 짧은 글, 어눌한 글솜씨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묵상과 연구인지 기도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초태생의 규례도 다시 읽어보십시오(11~16절). 이것은 처음 것,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심지어, 목사에게) 갖다 받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대신 죽은 것이 없었다면, 너희들은 죽은 존재이다. 아니, 이미 너희는 죽었다.”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깊이 경험한다면, 내 자아가 여전히 펄펄 살아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6. 이 묵상을 깊이 심령에 새기면서 17절 이하를 다시 읽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해가는 길을 가장 빠른 길,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해안 길)”로 인도하지 않은 것이 감사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가장 먼 길, 돌아가는 길, 험한 길로 인도하신 것이 은혜라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그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 아래 어디로 향하는 지 알 수 없는 여호와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삼일 길을 앞서간 여호와의 궤: 민수기 10장 29~36절)을 매일 매순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붙들려 따라가는 삶,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삶, 성령의 인도하심에 이끌리는 삶이 가장 복되고 기쁜 삶임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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