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12장 37~51절
1. 오늘 본문의 기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애굽을 떠나는 장면(37~42절)과 유월절을 지켜야 할 대상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입니다(43~51절).
역사적 서술이 강한 성경의 기록을 읽으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기록을 연대기적 서술(chronological narrative)로 읽으면 안 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2. 따라서 애굽에서의 생활이 40, 41절에 기록된 것처럼 ‘430년이 맞느냐?’ 아니면, ‘창세기의 400년(창15:30), 사도행전의 450년(행13:19)이 맞느냐?’로 너무 난상토론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43절 이하를 보면서 ‘과연 이방인에게 유월절이 허락되었느냐, 아니냐? 또는 ‘할례를 행하면 유월절을 지킬 수 있느냐, 유월절 지킨 자에게 할례를 받을 자격을 주어야하느냐?’라는 허망한 신학적 토론에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신학적 토론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과 구원의 관점에서 유월절과 할례의 참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3. 우리 잠시 약 4,000년 정도 거슬러 가봅시다. 모세가 출애굽기를 기록하던 ‘그 날’을 마음 속에 그려보십시오. 출애굽기를 비롯한 모세5경의 기록은 분명 광야 40년 동안 틈틈이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 환경과 분위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되실 것입니다. 조악한 필기구는 기본입니다. 기록시간이 밤이었다면 흔들리고 침침한 불빛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42절)로 마무리하며 ‘열번째 재앙’을 정리하듯 기록하는 모세의 마음을 생각해보십시오.
말 그대로 ‘주마등(走馬燈)’처럼 지난 시간이 마음을 스쳤을 것입니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a million thoughts race through his mind’였을 것입니다.
4. 그렇게 모세의 마음에 깊이 떠오른 감격과 감사가 무엇이었을까요? 마침내 사명을 감당한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자부심일까요? ‘내가 이렇게 쓰임 받다니…’라는 겸손한듯 뿌듯한 성취감일까요?
저는 아닐 거라 확신합니다. 모세의 마음 속에는 ‘유월절, 그 밤’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경외감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10가지 재앙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애굽을 떠난 ‘숙곳’에서 머물러 첫날 밤을 지날 때, 그들 마음 속에는 오로지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라는 도무지 말로 뱉을 수 없을 만큼의 복잡한 심령의 질문이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네, ‘어제 밤(유월절, 그 밤)’을 생각하면 오늘 내가 살아있는 ‘이 밤’이 ‘여호와의 밤’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 때 이런 기도가 저절로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 이 밤이 지나 내일 아침이 되는 것이 기적입니다. 내일 제가 눈을 뜬다면, 오늘을 살아갈 새생명 주셨음을 믿겠습니다. 그 날도 여호와의 날인 줄 믿고 살아가겠습니다.”라는 기도가 저절로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5. 유월(Passover)의 진정한 의미! ‘죽음이 어린양의 피 속에 담긴 대속의 은혜로 넘어갔다.’를 직접 경험하고, 제대로 경험한 사람에게 ‘여호와의 밤’은 종교절기로 지키는 한 날이 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영원한 죽음’에서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뼈에 새기듯 영혼에 다시 각인하는 시간이 ‘유월절’ 다음날 ‘여호와의 밤’이었습니다.
42절의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를 원어적 의미에 더 가깝게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밤새 지켜 주신 밤이다.”입니다.
6. 우리에게 허락된 오늘도 ‘여호와의 밤’을 지나고 얻은 새 날, 새 생명입니다. 밤새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켜 주셨음을 믿는다면, 오늘도 우리를 지키실 줄 믿고 힘있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닥칠 것인가에 대한 불안함, 막연함이 아니라, 밤새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붙들리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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