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에스겔 39장 1~29절
1. 오늘 본문 에스겔 39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20절은 ‘곡(Gog)’의 완전한 멸망입니다. 21~29절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입니다. 어제 말씀드렸듯이 ‘곡(Gog)’을 특정 국가, 민족으로 이해하게 되면 매우 지엽적이고, 협소하게 성경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류사 전체, 온 우주의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곡’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역사 속에서 등장했거나, 등장할 ‘강력한 국가, 민족, 제국’ 소위 ‘패권 국가’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런 국가들의 힘과 권력, 지배력이 영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5절의 기록처럼 그런 국가와 통치자들의 힘과 영향력은 반드시 무너졌고, 무너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 뿐만 아니라, 바벨론 제국 아래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왕, 주권자,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에스겔이 이런 말씀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이 진리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과 열방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엎드리게 될 것을 4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십시다. “이스라엘의 산 위”는 ‘회복될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합니다. 건물의 성전 혹은 종교 행위와 통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속의 은혜’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 입니다. 더 나아가 ‘십자가에서 완성하시는 ‘사랑과 공의의 완성, 완전한 통치’입니다.
3.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8~9절을 가만히 읽어보면 ‘그 날’ 즉 ‘여호와의 심판의 날’에 ‘이스라엘 백성’ 즉 ‘믿는 자들’이 직접 싸우거나, 전투를 치른 것이 아닙니다.
9~10절을 보시면 마치 전리품을 챙기듯 그냥 ‘성읍’을 나가서 ‘각 종 무기’를 불태웁니다. 숲에서 벌목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일곱 해(숫자 7은 완전수입니다. 완전한 멸망 의미합니다.) 동안 불태웁니다. 12~16절에는 ‘시체를 매장’하는 것을 기록합니다. 말 그대로 전투 후 뒷처리를 합니다. 무엇보다, 시체를 매장한다는 것은 정결(7, 14,16절)을 의미합니다. 17~20절은 전투 후에 벌어지는 승리자들의 잔치를 연상케 합니다. 물론, 피를 마시거나, 기름을 먹는 등 율법에 맞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방민족(특히, 바벨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뇌리 속에 명확히 남게 하기 위해 그 시대의 ‘보편적인 승자의 잔치’를 묘사한 것입니다.
결국 9~20절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에 ‘인간의 공로, 자랑, 의로움’ 따위는 포함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날’에 행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싸우시고, 모두 이루셨습니다. 오히려, 누린 것뿐입니다. 굳이 행한 것이 있다면 ‘불 태움’입니다. ‘정결’입니다. 깨끗하게 함입니다.
우린 모든 것을 거저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것,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모든 은혜를 거저 받아 누린 것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이 있다면, 사람 언어로 표현되는 행함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불’로 우리의 죄악을 태우는 ‘정결케 함’ 뿐입니다.
4. 진정한 ‘회개, 돌이킴,’을 통한 ‘정결케 함’이 없으면 ‘회복, 구원’은 없습니다. 21~29절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속에는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의 반응이 기록됩니다.
23절입니다. “내게 범죄하였으므로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고…”라고 기록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정결하신 하나님은 죄를 보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싫어서 고개를 돌리신 것이 아닙니다. 죄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죄악을 가리시고, 씻으셔야 합니다. 정결케 되었을 때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악이 예수님의 보혈로 덮이고, 씻겨야 합니다. 성령의 불로 태워져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향해 얼굴을 돌리십니다. 그것이 29절입니다!
이제 다시 7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정결의 역사를 가장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십니다. 처음 정결의 역사도 계속되는 정결의 역사도 ‘믿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입니다. 그렇게 ‘정결의 역사’가 흘러 “민족들”이 “내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정결케 하시는 역사의 흐름’이 계속되어 40~42장의 성전 재건, 43장 여호와의 성전 임재, 47장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와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살리시는 역사를 저와 여러분 또 주님의 교회를 통해 시작하셨습니다. 이 회복의 역사가 흘러가길 너무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혹시 내가 이 생명의 물줄기를 틀어 막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나의 본성을 공격하는 세상의 부추김, 속임수, 유혹으로 굳어진 내 마음이 ‘제방’을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굳은 마음을 십자가의 흐르는 피에 적셔야 합니다. 바로 그 때 ‘생수의 강’이 내 전인격과 삶의 영역에 흘러들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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