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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4월 16일 2021년 금요일 묵상

본문: 출애굽기 6장 14~7장 7절

1. 오늘 읽으신 본문을 끝으로 출애굽기 5장에서 시작된 모세의 갈등이 마무리 됩니다.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으로 바로(Pharaoh)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났지만, 오히려 갈등의 골이 더 깊어 졌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바로’앞에 다시 섭니다.

오늘 본문 ‘6장14~27절’을 보면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갑자기 족보가 등장합니다. 그것도 ‘르우벤, 시므온, 레위’의 족보가 등장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모세의 출신 지파인 ‘레위 지파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까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노예생활을 했지만, 그들이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애굽’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요셉’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애굽의 총리’를 배출한 ‘요셉 지파(에브라임, 므낫세)’의 지도자층(?)으로써 가지는 정통성과 자부심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2. 그런데, 이제부터는 지도자가 누구로 바뀝니까? 모세와 아론입니다. 레위지파입니다. 출애굽 시대를 여는 영적 지도자는 모세와 아론입니다. 게다가 성막이 지어지고, 제사가 시작되면서 ‘제사장’이라는 새로운 종교지도자 계층이 생겼습니다. (사실상 이스라엘 역사를 세속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주요 지파의 주도권 다툼으로 충분히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해는 말 그대로 표면적 이해입니다.

특히, “과거 별 볼일 없었던 지파를 다시 사용하셨다. 창세기 34장에서 세겜의 학살을 주도한 ‘시므온과 레위’ 그리고, 아버지 야곱의 첩(빌하)과 동침한 죄로 아버지에게 저주를 받은 ‘르우벤’(창49:3~7)이 다시 족보를 통해 강조되었다. 그 중에서 레위 지파는 제사장이 되었다.”라는 식의 해석도 그렇게 바람 직 한 것은 아닙니다. !

우리도 모르게 결론은 ‘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쓰임 받는 ‘나’라는 자아실현적 성경해석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6장 이후에, 거절과 좌절로 상실한 마음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모세를 일으키신 방법은 “내가 너를 위대한 지도자, 능력의 지도자로 사용하겠다.”가 아닙니다.

“나 여호와, 언약의 하나님을 바라보라.”입니다. “너의 어떠함, 지금 네가 닥친 상황이 아니라, 언약 안에 있는 자에게 생명과 구원을 허락하는 나 여호와를 붙들라.”는 말씀으로 그를 일으키셨습니다.

살펴보셨듯이 6장 이후에 “나는 여호와이니라”가 반복됩니다. 강조됩니다. 족보가 나열된 이유도 29절의 “나는 여호와라”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베푼 언약 안에서 저주는 더 이상 효력이 없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따위의 사람 혈통은 의미 없다. 그들에게 저주가 임했다는 식의 생각을 버려라. 이제는 내가 베풀 새로운 언약 ‘시내산 언약’을 붙들어라! 대신 제물을 드리는 속죄의 제사를 통해 성막에서 내가 너희와 친히 만날 것이다.” 라는 하나님의 새 언약 선포, 시내산 언약 선포를 봐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모두가 같다!”라는 것은 7장 5절에도 강조되어 있습니다. ‘선택 받음’이라는 가장 오해하기 쉬운 종교적 착각을 버리고 보면 보입니다.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말 속에는 “애굽 사람도 나의 언약 안에 있으면 내 백성이다.”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2장 38절을 보면 “수많은 잡족” 즉, 이스라엘 사람들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애굽 땅을 떠났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유월절 규례를 보면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하거든…”이라며 ‘할례(언약의 상징)’ 받은 후 본토인과 동일하게 대하도록 말씀하십니다.

언약을 통한 하나님의 선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잘못된 ‘우월함 특별함의 함정’에 빠집니다.

왜, 나만 특별해야 합니까? 그런 아픔, 그런 상황, 그런 일은 누구나 맞이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남 탓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런 상황에 밀어 넣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십자가 언약을 다시 붙드는 것입니다. 그 일을 만나 끓어오른 내 영혼, 안절부절하는 내 중심에 십자가 보혈을 끼얹어야 합니다. 그렇게 나를 다시 돌아보며 돌이키면 됩니다. 끊어내면 됩니다.

십자가 언약의 능력과 신실함을 믿는 사람은 그게 됩니다. 그 어려운 것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이끌려 됩니다.

십자가 보혈의 능력은 분무기처럼 밖을 향해 뿌려 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심령과 중심에 흘러내리는 생명의 진액입니다.

지금, 바로 지금! 십자가에서 흐르는 보혈, 우리 심령에 흐르는 생명의 진액에 나를 적시기 위해 엎드려 기도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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