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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4월 16일 2020년 목요일 묵상

본문: 에스겔 34장 17~31절

1. 오늘 본문 17~19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게 여긴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세우신 것을 자신들이 잘나서 그런 줄로 착각한 ‘이스라엘 지도자’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림, 먹이심, 돌보심 안에 있어야 할 ‘양떼’였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목자 되심’을 거부한 것입니다.

18~19절의 표현을 보면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좋은 꼴 먹는 것, 맑은 물 마시는 것을 작은 일, 하찮은 일로 여겼습니다. 심지어 남은 물을 발로 밟아 더렵혔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물을 더럽힌 양들’도 마셨습니다. ‘진짜 목이 말라 하나님의 생명수를 마시고 싶은 양들’도 ‘더러워진 물’을 마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할까요? 기독교 지도자들 혹은 기독교인들이 잘못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 십자가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양떼들’도 마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하는 본인들도 마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뜻과 상관없이 ‘변질된 복음’을 모두가 마시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마실 물이 없어, 타는 목 마름이라도 면하려고 ‘오염된 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당장의 갈증은 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다른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는 것과 같습니다.

2. 그리고 21절을 보십시오. ‘더럽힌 물’을 먹는 그 어리석은 양떼들이 모인 곳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더러워진 물을 서로 먹으려고 한 것일까요? 스스로 짓밟아 더러워진 물을 좀 더 마시고, 덜 마시며 자신의 잘 난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요? 양들의 주도권 다툼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오늘날 교회들, 교회 지도자들, 성도들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기독교 교육, 기독교 윤리, 기독교 사상,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도무지 분간이 어려운 ‘겸손한 척, 신앙 좋은 척, 은혜 받은 척, 축복 받은 척’으로 위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속에는 ‘자기 잘남, 자기 사랑, 자기 뽐냄’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주 교묘한 방법… 21절에 기록된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 뜨리기(소극적이고 교묘한 방법)’와 ‘뿔로 받기(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방법)’으로 다른 사람(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밀어냅니다. 가립니다. 괄호 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메시지도 가려 듣습니다. 내 귀에 사탕같은 말은 아멘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시큰둥 합니다. 교회를 비롯한 모든 공동체 안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합니다. 하고 싶은 것에는 해야만 하는 기막힌 이유를 붙입니다.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내세웁니다. ‘의무는 소홀히, 권리는 당연히’를 추구합니다.

3. 하나님은 이런 ‘남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죄성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아십니다. 유대교 종교 껍데기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약속해 주십니다. ‘진정한 왕, 목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다시 하나님과 ‘화평의 언약(25절)’을 맺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21~31절)

23절은 ‘다윗의 혈통’을 통해 사람의 몸을 입고 ‘대속의 제사’를 완성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목자’가 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26~27절은 ‘더러워진 물’을 마시던 ‘양 떼(하나님의 백성들)’가 “복된 소낙비(진정한 생명수)”를 마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정한 목자, 복된 창조주, 참된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될 것에 대한 기록입니다.

4. 우리 스스로 너무 ‘복음’을 훼손시켰습니다. 마시지 못할 물, 마시면 병드는 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내 죄가 못 박힌 피 묻은 십자가’가 아니라, ‘내 자아를 포장할 세련된 십자가’로 전해버렸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도 그들도 병들어 있는지 모릅니다. (사실, 그렇게 전했고, 병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갑니다. 31절의 말씀처럼 한낱 범죄타락한 인간일 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베푸신 은혜 안에 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양’에 불과함을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양’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목자의 인도함이 없으면 그저 들이받고, 오염된 물인 줄도 모르고 마시는 어리석은 존재인 것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 목자’아닙니다. 목회자에 대한 우상화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아니라고 하지만, 많이 넘어갑니다. 특히 내가 듣고 싶은 그 말, 나를 추켜세우는 그 말을 들으며 ‘사람 목회자’를 자기도 모르게 따라갑니다. 물론, 그 반대일 때는 가차 없이 떠납니다. 고개를 젖습니다.)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31절)는 이 하나님의 단순한 듯, 정곡을 찌르는 말씀 앞에 우리의 높아진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은혜 아니면, 난 아무것도 아님’을 다시 고백하십시오. 그 진심 어린 고백 위에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인도하심이 넘칠 줄 믿습니다!

지민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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