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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4월 15일 2021년 목요일 묵상

본문: 출애굽기 5장 22~6장 13절

1. 출애굽기 5장의 일들로 인해 마음에 여러가지 복잡함과 답답함을 지닌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록은 2절(출5:22~23)이지만, 사람의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적 교제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1~9절, 역시 기록된 것이 이정도라면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오간 영적 대화의 깊이와 범위는 가늠하기 힘들 것입니다.

여기서 어제와 같은 관점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1절을 보면, ‘바로(Pharaoh)’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2~8절은 오롯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2. 하나님께서 ‘강한 손’이라 표현된 초자연적인 기적과 이적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어떤 하나님인지, 내가 어떻게 너희를 이끌어내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물론, ‘강한 손’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초자연적 현상에 국한되는 현상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강한 손’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함’에 바탕을 둔 ‘언약’입니다.

하지만, ‘죄악된 본성, 육체의 습성, 죄성에 기울어진 영혼’을 가진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3. 따라서 하나님께서 2~8절의 말씀을 하신 것은 지금 당장 이스라엘이 알아들을 것을 기대하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9절을 보면 여전히 모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나중에! 한 참 시간이 지나!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언약에 대한 나의 신실함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함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2~8절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2~8절을 말씀하시면서 강조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이니라”입니다. 시작(2절)과 끝(8절)을 ‘나는 여호와’라는 자기 선언을 강조하십니다. (2~8절에서만 5번이 등장합니다.)


4.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스스로에게 부여하신 이름입니다. 인간의 종교의식 혹은 어렴풋한 신적 존재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은 이름이 아닙니다.

‘여호와’라는 뜻의 핵심은 ‘언약’입니다. 여기서 ‘언약’은 단순한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는 ‘약속’이 아닙니다. 조건 혹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계약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인간의 상태와 조건을 보고 약속을 맺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이 근거가 된 일방적인 약속입니다.

심지어 인간은 늘 언약을 깨뜨렸지만, 하나님은 또 찾아오셔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다시 맺을 때마다 언약은 더 구체화, 상세화, 명확화 되었습니다.


5. 따라서 ‘출애굽’의 역사와 과정은 단순한 ‘노예 생활의 탈출, 더 나은 곳으로의 이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선악과 언약)을 어기고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강렬한 의지가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출애굽의 역사’입니다.

출애굽의 진짜 목적인 ‘시내산 언약(출애굽기 19장 이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가장 구체적이고 상세하고, 명확하게 드러내어 기록해주신 것입니다.

6. 오늘 본문은 제 짧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물론, 언제나 부족함을 절감합니다.) 3절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를 묵상해보십시오.

이것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 마음에 감동이 된 것이 있습니다. 저명한 히브리어 문법학자인 G. Driver가 이 부분을 , “내가 이미 여호와로 알리지 않았느냐!(감탄의 부정문)”로 번역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야 ‘창세기 4장 26절’과 충돌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언약’을 통해 노아시대와 대홍수 이후 인간에게 잊혀진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너희는 잊었지만, 나는 잊지 않았다!”라는 하나님의 외침이 ‘시내산 언약’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 속에는 성막 제사(대속의 제물)를 통해 하나님을 누구나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완성하실 ‘십자가 언약’이 아주 구체적이며, 실제적으로 드러난 예표였습니다.

7. ‘시내산 언약’의 중심은 ‘대속의 제물’을 드림으로 대신 값을 치르고 죄를 용서하시는 ‘속량의 은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맹세의 땅,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궁극의 이유는 ‘속량의 은혜’가 이루어졌음을 열매로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6~8절입니다.

따라서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모든 기적과 이적은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6~7절)를 이루어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안타깝지만, 현실의 문제에 눈이 가리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분의 신실함으로 언약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는다면, 십자가에 내 전인격이 못 박힌 불편한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십자가 언약에 붙들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린 삶이 우리의 참 행복이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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