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8장 39절~19장 16절
1. 예수님을 심문한 빌라도는 다시 관정 밖으로 나갑니다.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18장28절)을 지키기 위해 관정 밖에서 머물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유대인들)을 만나기 위해서 입니다.
빌라도가 관정 안팎을 왔다갔다한 것처럼 그의 마음도 왔다갔다합니다.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18장 33~38절)에서 이미 알았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그의 질문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향해 던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예수님을 향해 던질 수 있는 질문입니다.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것은 건방진(?) 것이 아닙니다. 주소를 제대로 찾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말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육체로 보이십니다. 십자가를 통해 보이십니다.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보여주십니다.
38절은 요한복음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다시 환기를 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이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붙들게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세상을 왔다갔다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을 통해 다시한번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앞에 선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걸어가는지…내 삶의 방향은 무엇인지… 결국 붙잡으려는 것,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십니다. 빛 앞에 다 드러났다고 생각만 하는지 아니면, 나를 드러낸 그 빛 앞에 감춰둔 모든 것을 내놓고 있는지 물으십니다. 감출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자의 삶을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2. 빌라도에 관한 사도 요한의 기록을 보면 그를 악마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합니다.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원흉(?)이라는 선입견을 접어두고 읽어보십시오. 뭐가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이익 때문에 갈등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더 답답한 것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치는 유대인들입니다. 정말 간악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뒤에서 선동하는 ‘유대교 종교인들(대제사장들 및 바리새인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빌라도와 예수님의 대화,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상세히 기록합니다. (천천히 반복해서 읽어보십시오.)
어쩌면 빌라도는 조연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으려고 힘썼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빌라도에게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19장 11~1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연은 ‘유대인들’입니다. 몇일 전, 자신들의 겉옷까지 벗어서 바닥에 깔았던 유대인들! 말 그대로 예수님을 왕처럼 대했던 유대인들(주연, 아니 주범)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이 본문입니다.
3. 빌라도가 조연이라면,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도 조연입니다. 유대인들이 주연(주범)이라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주연(주범)입니다.
정죄감을 드리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포함입니다.) 영적 긴장, 영적 부담, 영적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믿는다 혹은 잘 한다’라는 자기 평가 또는 인간의 평가에 속지 말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말로 예수님을 “없애 버려라. 십자가에 못 박아라.”라고 대놓고 말하는 기독교인(?)은 없습니다. 대신, 자기 삶으로 말합니다. 모든 삶의 순간에 선택으로 말합니다. 그 선택에 대한 결과로 말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못 박도록 넘겨줍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병사들에게 못 박히도록 넘겨준 ‘유대인들’처럼 말입니다. (19장 16절)
4. 저는 15절에 기록된 ‘대제사장들(‘안나스’의 사위, 다섯 아들)’이 내뱉은 말, “가이사(Caesar, 로마 황제)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는 그들의 대답, 그 속에 담긴 그들의 마음이 섬뜩했습니다.
사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 예수님에게 십자가 사형이 선고되는 것을 통해 ‘너희의 왕인 나를 너희 스스로 버렸다.’라는 메시지를 다시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사무엘상 8:7)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 다시 드러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삶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두가지 중 하나를 말하고 있습니다. ‘가이사가 왕입니다.’ 또는 ‘예수님이 왕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충 뭉뚱그린 내 삶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삶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세밀하게 비춰보십시오. 이건 절대 아닐 거야 라는 것까지 다시 살펴보십시오. 예수님을 왕의 자리에서 밀어낸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의 왕이 아니라고,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도록 넘겨준 그들의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도록 더욱 기도합시다.
왕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셨으나, 이런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버림받고 죽으신, 그러나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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