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10장 17~31절
1. 오늘 본문은 참 껄끄러운 말씀입니다.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준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 각 자의 마음 상태는 다양할 것입니다.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저들’을 향한 말씀일까요? 이정도 살면 그래도 턱걸이 정도는 했다고 안심할 수 있습니까? 훌륭한 신앙인들의 간증 혹은 설교를 듣고 잠시 찔림 받은 것으로 넘어갈 수 있는 말씀입니까?” 저와 여러분 속의 갖은 ‘회피성 대답’을 거두고, 말씀을 가만히 보십시오.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말고 내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집중하십시오.
2. 우리는 아무리 버려도, 어떤 것을 포기해도, 무슨 선행을 해도 ‘자기 의로움’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로움’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23~25절, 특히 25절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 아닙니다. ‘절대 불가능’입니다. 그리고 ‘부자’는 ‘나보다 부자’가 아닙니다. 21세기, 선진국이라는 말을 듣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그 형편’이 어떠하건 세계 절대 다수의 빈곤층보다 ‘부자’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은 ‘부자’는 구원을 못 받고, ‘가난한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면 ‘부자’와 ‘가난한 자’의 기준을 누가 어떻게 정합니까?
물론,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칭찬받아야 합니다. 잘못된 부의 개념에 취해 사는 것은 잘못입니다.
3. 오늘 본문의 핵심은 ‘선행’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로움(19~20절 문맥)’으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넌지시 자랑하러 온 ‘한 사람’에게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26~27절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이 하신다.”가 핵심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삶으로 맺는 ‘열매’로의 ‘선행’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도 모르게 자랑이 되면 안 됩니다.
4. 열매는 맺히는 것이지, 맺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실 때 맺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나의 의로움’을 어떻게든 드러내려 합니다. 틈만 나면 신앙 좋은 척합니다. 척에 익숙합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버린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9장 33절 이하에서 보셨듯이 그들은 “누가 크냐”로 ‘쟁론’했습니다. 결국 28절 ‘베드로’의 말은 좀 버렸다고, 예수님 좀 따라다녔다고 그걸 ‘자기 의로움’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29~31절의 예수님의 대답을 ‘100배’와 ‘먼저 될 자’에 초점을 맞추어 보시면 오해를 낳습니다. ‘100’은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름으로 일부를 잃은 그들은 ‘완전한, 영원한 예수님’을 얻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5. 이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부자이며, 율법을 지킨 한 사람’도 ‘제자들’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고, 따라다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 자아를 내려놓고, 나를 버리기 위해 예수님을 믿습니까? 현세에는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얻고, 내세에서는 ‘영생과 뭔가 또 다른 축복’을 얻기 위해 믿습니까?
십자가 앞에서 나는 왜 예수님을 따르는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끊이지 않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