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작성자 사진Hyung Yun

3월 8일 2021년 월요일 묵상

본문: 시편 58편 1~11절



1. 본문, ‘시편 58편’은 역사적 배경이 표제에 없습니다. 특별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시편은 아니지만, 시의 전반적인 내용은 소위 사회 지도층들이라 여겨지는 사람들의 불의와 악에 대한 책망과 탄식입니다.

우리가 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시편을 인도자를 따라 회중이 함께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왕이었던 다윗도 함께 불렀으며, 다윗 이후의 여러 이스라엘 왕들도 불렀을 것입니다.

이 시편을 고백하면서 다윗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또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이런 내용의 시편을 자신의 치명적인 범죄 사건 이후에도 계속 불렀을까?’라는 껄끄러운 질문도 해보았습니다.

저는 피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시편을 회중들과 함께 부르면서 자신의 마음을 여호와 하나님에게 붙들어 맸을 것입니다.

이 시편을 고백하면서 의인과 악인을 구분 짓기보다 ‘악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안에 붙들리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죄인에게 베푸신 언약에 매인 바 되지 않으면, 제가 악인입니다.’라는 마음으로 고백했을 것입니다.


2. 따라서 본문 1절에 ‘통치자들이 말해야 하는 정의, 올바른 판결’은 지도층이 가진 권력과 힘을 가지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높은 힘과 권위를 가진 지도자라도 ‘죄인된 자신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본성과 본질에 대한 참다운 인정은 하나님께서 대속의 은혜를 통해 이루신 ‘정의’를 붙잡게 됩니다.

이런 영혼의 자세와 태도를 잊지 않아야 자기에게 부여된 ‘권위와 힘’을 함부로 휘둘러 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두려움과 경외함을 가지고 사용하게 됩니다. 특히, ‘선택 받았다. 쓰임 받는다.’는 특별함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3. 다윗이 이런 시편을 기록했을 때, ‘사울을 포함한 저 악인들이 망하고, 의인인 내가 드디어 왕이 되었구나’라는 허망한 감격으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윗은 떵떵거리는 권세의 허탄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입니다. 땅에서 누리는 권력, 명예, 부유함 등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직접 보고, 경험했습니다. 그런 것들에 취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절실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6~9절을 읽으시면서 마음의 심령에 그려보십시오. 가장 강하다는 것들도 얼마나 허망하게 사라지는가를 상기시켜보십시오.

특히, 저는 8절의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라는 표현이 너무 다가왔습니다. 뜨거운 햇빛에 노출된 달팽이,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달팽이... 당장은 몸에 흐르는 끈적이는 액체로 살아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멈춘 것인지, 기어가는 것인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몸짓을 하다 이내 말라 죽는 달팽이…

하지만, 다윗은 ‘그래서 인생은 허망한 것이다.’라는 식의 허무주의적 관점으로 이런 표현들을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 소망과 생명이 무엇인지 알게 하려고 이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절대 죄성과 절망 앞에서 나를 건지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길로 모든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왕이라는 권력을 가진 인간들도 결국 붙들어야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움’이라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4. 악인은 인간의 도덕 기준에서 악한 짓을 한 사람도 해당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악인, 성경이 말하는 악인, 하나님에게 악인은 다음과 같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죄인됨을 인정하지 않으니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움인 대속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로움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붙들지 않는 사람이 ‘악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십자가 언약을 통해 다시 하나님 품으로 부르시는 음성, 생명의 공동체로 다시 부르시는 음성’을 거절합니다.

4절의 고백처럼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처럼 살아갑니다. 특히 5절은 일종의 비꼬는 표현입니다.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냥 자기가 옳고, 자기가 왕이고, 자기를 위해서만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알량한 종교심조차 없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귀를 막으면 독사가 됩니다. 내면에 나도 감당할 수 없는 독을 가득 품은 독사가 됩니다. 그 독으로 남도 죽이고, 나도 죽는 독사가 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영혼의 독을 해독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영혼의 찌꺼기가 씻겨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내가 보이고, 이런 나를 십자가로 부르시는 생명의 음성을 들으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조회수 17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