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23장 1~12절
1.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당시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와 갈릴리 지역 분봉왕이었던 ‘헤롯’에게 심문 받는 장면입니다.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사형을 판결하고 집행할 결정권은 로마 법정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산헤드린 공회’에서 종교적 이유로 예수님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22장 71절)으로는 예수님을 처형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종교적 목적과 이익을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수님을 죽여야 하는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갑니다.
그토록 싫어하는 ‘빌라도’에게 말입니다. (물론, 겉으로는 빌라도에게 협조적인 척했습니다.) 이것은 ‘헤롯’과 ‘빌라도’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치적 목적 때문에 견원지간(犬猿之間, agree like cats and dogs)처럼 싸우던 두 사람도 예수님을 죽이는 것 때문에 친구가 됩니다(12절).
2. 오늘 본문을 가만히 읽어보면 인간의 간악함과 간교함이 잘 드러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활한 술수를 서슴지 않고 사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버리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고 계시지만, 인간은 예수님을 이용해 자기 욕망을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나는 ‘무리’가 아니다. 나는 ‘빌라도’가 아니다. 나는 ‘헤롯’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성경은 내 영혼을 비추는 빛이 아님을 스스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3.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발하는 내용(2절)을 잘 읽어보십시오. 모두 사실입니다. 그런데 편집된 사실입니다. 앞뒤 정황은 뺍니다. 로마 황제의 임명으로 식민지를 관리하는 총독(빌라도)이 들었을 때 가장 선동적인 말, 긴장하는 말을 골라서 합니다. 바로, ‘세금 거부’와 ‘반란혐의’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 한번도 세금을 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마태복음 22장 15~22절’을 보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자신을 ‘왕’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말씀하실 때, ‘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표현하실 때, 그저 ‘인자(人子, Son of man)’라 말씀하십니다. (물론, ‘인자’라는 표현에는 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정말 억지로 ‘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곳이 있다면, 19장의 므나 비유에서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19장 12절)입니다.
4. 사실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 ‘그리스도’라는 말을 사용하신 적도 없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은 바로는 없습니다. 혹시 있으시면 알려주십시오.)
한번쯤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기 선언 7가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요한복음에 등장합니다. “나는 ~이다”라는 예수님의 자기 정의, 자기 선포는 아래와 같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41).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나는 양의 문이다(요10:7,9). 나는 선한 목자다(요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나는 참 포도나무다(요15:1,5).”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실 때 하신 이 말씀을 요한복음의 기록자인 ‘사도 요한’만 들은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고발하던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5. 그런데, 그들은 어디서 가져온 말인지도 알 수 없는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라는 말로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이런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은 그들이었구나. 그들이 자신과 사람들의 구원자(그리스도)가 되기 위해 진짜 구원자인 예수님을 죽이려 했구나.”라는 마음 말입니다.
유대교 종교인들에게 예수님을 향한 사람들의 인기는 곧 ‘종교권력’이었습니다. 그러니, ‘종교권력을 이용해서 왕이 되고 싶었던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속에 있는 말을 뱉아낸 것입니다. 자신의 말이 자기의 어떠함을 나타낸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아니,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통제할 수 없는 자기 욕망에 따라 그들의 입을 연 것입니다.
6. 인간은 누구도 예외 없이 스스로가 왕이 되고 싶어합니다. 내 맘대로 하고 싶어서 ‘그토록 바라는 것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으려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만큼 얻고 싶어 합니다.
구원을 받으려는 이유, 영원한 생명이 필요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라는 구원의 통로, 십자가라는 구원의 수단을 이용하여 ‘내가’ 영원히 살기 위해서 입니다.
겸손하다고 여기는 사람일 수록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왕 되심, 주인 되심을 버린 것이 범죄한 인간 본성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에서 나는 죽고,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만 내 안에 사시는 것이 남은 삶의 목적이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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