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12장 35~44절
1. 오늘 본문은 크게 3가지 에피소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서기관들이 표면적으로 가르친 ‘그리스도(메시야, 구원자)’에 대한 진실을 직접 가르치시는 부분(36~37절)입니다. 시편 110편의 다윗의 고백을 인용(36절)하시면서 가르치십니다. 이것은 ‘다윗의 혈통’을 따라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36절의 “주(성부 하나님)께서 내 주(성자 예수님)께 이르시되…”를 듣는 사람들에게 깊이 생각하도록 하심으로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즐거움(37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 공포심, 위압감 등’을 주심으로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즐거움(희락, 기쁨, 감격, 사랑, 은혜)’로 이끄십니다. 혹시라도 무턱대고 ‘하나님이 치신다. 손대신다. 심판하신다.’는 식의 두려움과 공포심을 조장하는 목회자, 설교자, 종교인, 예언가? 등이 있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반대로 사람을 추켜세우는 사람도 경계해야 합니다.
2. 두번째 에피소드(38~40절) 역시 ‘서기관’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당시의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 잘 아는 자, 연구하는 자 등’의 타이틀을 내세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모세 5경 등)’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요리하여 전하고, 이용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욕망을 ‘종교(유대교)’로 포장하여 충족했습니다. 존경을 빙자하여 38~39절에 나타난 행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2,000년 전 ‘서기관’들에게만 해당됩니까? 또 오늘날의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될까요? 아닙니다. 우리 모두입니다. 39절의 “서기관들을 삼가라” 는 “서기관들의 욕망을 삼가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원어에는 “서기관들”과 “삼가라” 사이에 ‘욕망, 욕심 등’의 뜻을 가진 ‘thelo’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서기관들의 욕망, 욕심’과 같은 것이 없을까요? 자주 말씀 드리는… 예수님을 통해 ‘자아실현’하려는 마음이 우리에겐 없습니까? 요셉, 모세, 다윗, 솔로몬, 다니엘 등을 좋아하는 이유가 정말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자녀를 특별히 사용하시길 바라는 진짜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솔직한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 은혜를 바로 깨닫게 됩니다.
3. 세번째 에피소드(41~44절)는 부자의 헌금은 안 받으시고, 가난한 사람의 헌금은 받으신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혹시라도 이런 본문으로 ‘부유한 사람들’을 비방?하는 것으로 이용하면 안 됩니다. ‘가난은 정의, 부유함은 불의’라는 식의 등식으로 연결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예수님’에 이런 저런 것을 섞고 덧붙일 수 있습니다. 풍족한 사람은 이 풍족함이 영원?하기 위해, 궁핍한 사람은 궁핍에서 벗어나,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풍요를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물론, ‘구원은 따놓은 것’입니다. 플러스 알파를 원합니다.
44절의 “풍족한 중에 넣은 것, 생활비 전부를 넣은 것”은 ‘전부’와 ‘일부’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나를 영접하고, 믿고, 따르고, 사랑함에 있어서 너의 ‘전부, 전 존재, 전인격, 생명’까지도 줄 수 있느냐?”를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질문 앞에 섣불리 “네 그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죄악 된 우리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성부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온전히 드린 예수님, 이 땅에서 성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위해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쏟으신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4. 예수님께서는 ‘헌금함’을 마주하여 앉아 계십니다. 네, 우리의 삶 전체를 대면하여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종교행위, 우리의 전 인생, 우리의 심령을 보고 계십니다. 감추고, 숨기고, 덮어놓을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나의본성을인정하며십자가앞에나갈때, ‘정결한마음, 예수님의마음’이임할줄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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