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22장 54~71절
1. 한밤 중에 체포되신 예수님은 먼저, ‘대제사장의 집(54절)’으로 끌려가십니다. 그리고 날이 밝아지자 당시 유대교 최고 종교권력기관이었던 ‘산헤드린 공회(Synedrion council)’의 재판에 회부되는 장면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장소적 의미가 아닙니다. 구성원들과 그들의 판결의 권위, 효력 등이 중요합니다. 현직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유력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주축을 이룬 ‘평의회(council)’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모임은 ‘대제사장의 관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 66~71절을 가만히 읽어보면 예수님을 어떻게든 죽이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교묘함, 억지스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 조선시대의 “네 죄를 네가 알렸다!”가 생각납니다. 증인과 증거에 의한 재판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 증인과 증거 없는 재판을 금지(신명기 19:15)하는데도 말입니다.
십자가에서 범죄한 우리 대신 재판을 받으시고, 모든 죄악을 짊어지셔야 하는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의도와 계략을 아시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참 역설적이게도 ‘그리스도(메시야, 구원자)’를 그토록 기다린다는 그들이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그들 스스로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70~71절).
3.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입에서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그 말과 내 삶은 전혀 다른 길을 갈수 있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을 말입니다. (일반적인 ‘거짓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으니,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착각합니다.
심지어, ‘난 교회 다니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유명 설교도 들으니 난 신앙 좋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합니다. 그 반대로 ‘저는 부족합니다. 기도가 모자란 사람입니다. 등등’라고 말하면 겸손해지는 줄 압니다.
오늘 본문에도 말한 것과 행한 것이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네, ‘베드로’입니다. 그의 과격하고, 단순한 성격을 운운하는 것은 좀 접어 두고 생각해보십시오.
33절에 기록된 그의 말,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라는 그의 말과 54~61절에 기록된 그의 행동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과연 누가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난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경우, 어부였던 베드로의 성격, 성향, 출신 등을 이유로 이런 그의 행동을 당연한 듯 생각합니다. 자기는 베드로와 반대의 성격이라는 것을 근거로 자기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자기 착각’입니다.)
4. 베드로 같은 나, 베드로 같을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십자가 앞에 엎드린 심정으로 성경을 읽습니다. 좌우에 날 선 검보다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수술해주실 것을 기도하며 읽습니다. 성령께서 내 어두운 심령을 비춰 주실 것을 간구하며 읽습니다.
56절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을 멀찍이 떠난 베드로, 숨어있는 베드로를 발견한 것은 ‘한 여종’이 아닙니다. “불빛”이었습니다.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기 때문입니다.
네, 베드로의 얼굴을 비추는 불빛이 그를 발견 당하게 한 것입니다. 그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부끄러운 내 자아상을 비춰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두운 내 자아의 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진정한 은혜입니다.
5. 또 다시 56절을 묵상해보십시오.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주목하여…” 즉, ‘베드로가 불빛을 마주하여 앉았다’라는 정확한 설명을 기록한 것은 ‘누가복음’뿐입니다.
역사학자이자 의사였던 ‘누가’는 성령의 감동과 함께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을 방문하며 ‘누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세한 증언을 누구를 통해 들었겠습니까? 네, 베드로입니다. 위대한 사도(使徒, Apostle)의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의 빛 안에 거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인간이 들려주는 고백을 기록한 것이 54~62절입니다.
“그때 난 두려웠었네. 사람들 틈에 불을 쬐고 있었지만, 얼굴이 지펴진 모닥불 빛에 드러날까 어깨를 잔뜩 움츠렸었다네. 결국, 그 불빛에 내 얼굴이 드러나고 말았고, 한 여종이 나를 알아봤다네. 그렇게 난… 연거푸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고, 저주까지 했지.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네. 그때, 그 불빛이 나를 비추지 않았다면 난 그저 어둠 가운데 숨어서 나를 원망하며 살았을 것이네. 그렇게 비춰진 내 얼굴, 들켜버린 내 본 모습에 절망하고, 도망쳤지만… 예수님은 다시 모닥불을 피우고, 떡과 고기를 구우시면서 나를 다시 찾아오셨다네.”라는 그의 심령에 떨어지는 눈물이 보여야 합니다.
베드로 심령의 눈물이 보인다면, 그 심령의 눈물이 우리 마음에 흐른다면,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빛에 인도함 받으며, 예수님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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