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12:18~34절
1. 오늘 본문에는 ‘사두개인들’이 등장합니다. 주일에 읽으셨던 13절 이하의 ‘바리새인들’과 함께 ‘유대교’의 중심 세력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들입니다. 사두개인들의 조상인 ‘사독(대제사장)’은 솔로몬과 왕위 쟁탈전을 벌였던 ‘아도니야’를 지지했던 ‘아비아달(제사장)’과 달리 다윗 왕의 뜻을 따라 ‘솔로몬’이 왕이 되는 데 공헌을 합니다. (열왕기상1~2장 참고)
이후 제사장의 중심 혈통은 ‘사독 계열’ 제사장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결국 이들이 독점하던 ‘대제사장’자리는 ‘종교 권력화’됩니다.
2. 이 ‘사두개인’의 특징 중의 하나는 1절에 기록처럼 ‘부활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부활이 사실이라고 해도 믿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에게는 이 땅의 삶, 현실의 삶은 너무 중요합니다. 종교 권력을 이용해서 부와 명예를 마음 것 누리는 육체의 삶이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19절의 “모세가 우리에게 써준 것” 바로 ‘모세오경’,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종교적 이권과 안락함’을 영원히 보장해주는 ‘증거 자료’로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말씀만 뜯어서 집중적으로 묵상, 연구, 적용하며 살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 예수님에게19~23절을 줄줄 읊으며 얼마나 의기양양했을까요? “옳다구나, 딱 걸려 들었어.”라며 말입니다.
3. 예수님의 대답을 가만히 봅니다. 24절, “오해함이 아니냐”의 원어 속에는 ‘잘못 이해했다’는 뜻과 함께 ‘속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능동형으로 사용하면 ‘속였다’도 됩니다.
네,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이권과 욕심을 이루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다가 “스스로 속았습니다. 남도 속였습니다.”
이것이 비단 그때만의 일입니까? 오늘날도 흔히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오해함으로 너무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잘 아십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자신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편의로 해석하는데 너무 익숙한 우리 말입니다.
4. 그렇게 이야기는 28절 이하로 넘어갑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입니다. 그나마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34절을 보면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33절을 보면 ‘그 서기관’은 ‘전인격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가 놓친 것이 있습니다. ‘그가 사랑해야 할 이웃’ 중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빠졌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면 이런 영적 반응이 일어납니다. “나는 죽고, 그 분이 나를 통해 일하는 것이 너무 기쁩니다. (이것을 단순하게 ‘쓰임 받음’으로 이해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렇게 내가 사라지는 것이 정말 감사로 다가옵니다. 결국, 내가 아닌, 예수님이 ‘상대방(가족, 이웃)’을 사랑한 것을 알기에 그냥 가만히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흘러 듭니다.”
십자가의 진리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답답한 것 같습니다. 느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빠르지 않지만, 바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빠름이 아니라, 바름을 따라가야 합니다.
“마음을다하고, 목숨을다하고, 뜻을다하고, 힘을다하여주너의하나님(십자가에서죽으시고다시사신예수님)을사랑하시길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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