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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3월 29일 2021년 월요일 묵상

본문: 누가복음 22장 39~53절


1. 본 단락은 예수님께서 감람산(겟세마네)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땀을 흘리며 기도하시는 장면(39~46절)과 가룟 유다와 함께 온 사람들에게 붙잡히시는 장면(47~53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앞둔 예수님의 기도와 그 심정은 인간의 언어와 이성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저 단순하게 ‘열심을 다한 기도, 생명을 거는 기도, 사명 감당을 위한 기도’라는 종교적 이해, 선입견 등을 버려야 합니다. 성령의 비추심을 따라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2.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만큼 기도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42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이 주는 고통의 무게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더 괴로우신 것은 ‘완전한 하나님(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성자(聖子)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해 ‘성부(聖父)하나님’과 단절되는 것이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셔서 무덤에 계신 3일은 이 땅의 시간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함께 계시며 교제하시며, 함께하셨던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께서 ‘죽음’을 통해 단절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있을 수 없는 그것’을 감당하시면서까지 십자가를 통해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신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신 그 분이 당할 육체의 고통뿐만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이 당할 수 없지만, 당해야 하는 ‘죽음(영원한 단절)’때문에 괴로워하셨습니다.

진짜 ‘죽음’은 육신의 호흡이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단절이 진정한 ‘죽음’입니다. (이것을 깊이 묵상해야 영혼의 구원, 십자가를 통한 생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3. 예수님의 기도는 본성을 거스르는 기도입니다. 일어난 상황, 현상에 대하여 인간 육체의 본성대로 이끌리는 것을 하나님의 뜻에 붙들어 매는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아담은 인간 육체의 본성에 이끌리는 대로 반응하여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행했습니다. 그렇게 선악과를 범하여 범죄 타락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과의 단절(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두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인간 육체의 본성 반대로 행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택하심으로 하나님과의 연결(생명)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육체의 본성을 거슬러 십자가를 택하기 위해 땀이 굵은 핏방울처럼 흘러내리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진짜 기도는 이런 것입니다. 나의 원함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기보다, 내 생각 반대로하기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이런 기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내 안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이 사시기 때문입니다.


4. 성령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겟세마네, 그 기도의 자리로 부르고 계십니다.

제자들에게 46절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껴보십시오. 책망이 아니라, 제자들과 우리를 진정한 기도의 자리인 겟세마네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 부르심에 ‘영적인 귀’를 열어 반응해야 합니다.

사실, 인간은 범죄 타락하면서 영적인 귀를 잃어버렸습니다. 50절에 ‘그 중 한 사람(베드로)’의 칼에 ‘오른쪽 귀가 잘린 대제사장의 종(말고)’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 잘려 나간 귀’를 다시 붙여 주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네, ‘예수님’입니다. 51절 하반절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그저 육체가 치료된 기적일까요? 기록자인 ‘누가’의 직업이 의사라서 ‘잘린 귀가 어떻게 붙었을까?’라는 직업적 호기심에서 더 상세히 기록한 것일까요? 단순히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범죄 타락한 뒤 영혼의 귀가 멀어버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반응할 수 있도록 ‘영적 청각’을 회복시키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5. 참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사람의 눈과 사람의 생각, 사람의 귀’로 듣고 판단합니다. 적용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상황과 성경의 이야기를 연결시킵니다.

그런 식의 성경 이해와 삶의 적용이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위험합니다. 자칫 자기 우월감 충족 혹은 자기 상황 돌파의 도구로 성경을 이용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을 때, 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범죄함으로 잘려 나간 영혼의 귀를 십자가로 꿰매 주십시오. 아니, 인간의 귀는 말씀을 검으로 매일 잘려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귀로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어두운 우리 영혼을 비추시는 성령님, 막히다 못해 잘려나간 내 영혼의 귀를 어루만지시는 예수님의 손길이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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