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레위기 10장 1~11절
1. 레위기 8장에서 제사장이 세워지고, 9장에서 아론이 첫 제사를 드리면서 성막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죄인들의 죄를 씻는 제사가 시작됩니다.
아론을 통해 드려진 첫 속죄제와 화목제를 태운 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것입니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의 제물을 태웠습니다. 무엇보다 ‘기름’을 태웠다고 기록합니다. (레위기 9장 24절)
제물보다 중요한 것은 제물을 태우는 불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물을 태우는 의미는 죄를 태운다는 것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2. 성경에서 불은 분명, 능력을 상징합니다. 다른 능력이 아닙니다. 죄를 태우고, 깨끗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죄를 용서하시고, 태우시고,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친히 온전한 속죄의 제물, 화목제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은 성령(불)의 임재를 통해 영원하고, 완전하고, 온전한 죄 씻음을 이루셨습니다. 그렇게 저와 여러분의 구원, 하나님과의 하나 됨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 안에 품으셨습니다.
이 진리와 생명이 우리 안에 넘쳐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불을 찾지 않습니다. 아니, 성경이 말씀하는 불! 성령의 불!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게 됩니다.
3. ‘다른 불’을 가지고 여호와께 분향하려 했던 ‘나답’과 ‘아비후’를 단순히 무시무시한(?) 종교 규칙을 어긴 사람이는 생각을 접어 두십시오. 하나님께 저주 받아 불 타 죽은 사람이라는 섬뜩한 생각을 버리고 봐야 합니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답’과 ‘아비후’는 그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4,500여년 전입니다. 오늘날처럼 불을 구하기 쉬운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데 굳이 수고스럽고, 불편하게 ‘다른 불’을 향로에 담아 분향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번제단에 있는 불을 사용하면 됩니다.
첫번째 제물을 불태운 불은 계속 타오릅니다. 꺼지지 않습니다. 꺼질 수 없습니다. 24시간 타오릅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리기 때문입니다(출애굽기 29:38~46, 민수기 28:1~8).
저는 평범한(?) 제사장도 아니고,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이었던 ‘나답’과 ‘아비후’의 이런 행동이 참 이해가 안 됩니다. 성경은 그들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기에 섣불리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 깊이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두사람은 참, 잘하고 싶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좀 앞서 가려 한 사람, 잘한다는 말에 목 마른 사람, 튀고 싶은 사람, 남에게 지고는 못사는 사람이 아니었을까?’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굳이 할 필요가 없는 행동(과잉행동)을 했던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저도 잘 하려다 걸려 넘어집니다. 잘 하려다 급한 마음이 튀어나옵니다. 잘 하려다 선을 넘기도 합니다. 그런 어리석음 때문에 가슴 치며 또 다시 엎드린 날이 너무 많습니다.
4.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나의 오염된 생각을 씻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내 결정과 판단을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망령된 자아를 불태워 달라고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가장 깊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짜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기도한다면 이런 기도가 그냥 흘러 나옵니다.
성막(성전)에서 향을 태운다는 것은 ‘기도’를 상징합니다. 흔히 우리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간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도가 쌓이고 쌓여 하늘에 닿는다는 공로 신앙과 뒤섞인 무속적 생각을 버린다면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올라가는 ‘향’과 같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분향’을 위한 불은 ‘번제단’에서 가져와야 했습니다. 네, 죄를 완전히 불태우고 남은 재 속에 있는 ‘숯’이어야 합니다. 그 숯이 머금은 불, 우리의 모든 죄악을 태우시는 여호와의 불이 아니면, 성소로 들어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향’을 태워 드릴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30장 1~10절)
우리의 기도를 다시 점검합니다. 성령의 불, 기도의 불이 내 안에 임할 때 어떤 기도가 쏟아지는지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심령 속에 있는 십자가의 번제단 앞에 엎드립시다. 그 속에 있는 숯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뜨거워 온 심령이 데일 것 같아도 품는 것이 생명과 구원의 유일한 방법임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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