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45편 1~17절
시편은 일반적인 성경의 기록과 다른 특징들이 있습니다. 일명, ‘계시(啓示, revelation)’라고 표현하는 성경처럼 메시지의 방향이 ‘위(하나님)에서 아래(인간)’를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편은 ‘아래(인간)에서 위(하나님)’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에 대한 인간의 찬양,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에 대한 인간의 감탄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방향이 바뀐 수직적 메시지’입니다.
또한 시편 속에는 수평적 메시지도 있습니다. 즉,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 혹은 내가 깨달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에는 성령의 감동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기록자의 마음을 감동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성경의 메시지는 근본적으로 ‘위에서 아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수직적, 수평적 메시지’모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굳이 구조를 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8절은 왕을 향한 수직적 메시지입니다. 9~16절은 수평적 메시지입니다. 마지막 17절은 다시 수직적 메시지로 전체가 마무리됩니다.
2. 시편 45편의 테마는 ‘결혼’입니다. 왕과 왕비의 결혼입니다. 따라서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있었던 왕을 의미함과 동시에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 시편은 왕실의 결혼식에서 불렀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편 45편’을 결혼하는 왕에게 헌정하는 ‘사랑의 노래’라고 말합니다. 특정 왕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오빌의 금(9절), 두로의 딸(12절)”이라는 기록에서 ‘솔로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1~2절은 너무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입니다. 아무리 솔로몬의 지혜가 뛰어나다고 해도 ‘인간 왕’에게 이런 식의 표현은 과한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을 아무리 받은 사람이라도 이런 것은 피해야 합니다. 누군가 이렇게 표현해도 거절해야 합니다. 나를 향해 이런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면서 평소 자신의 삶, 말, 행동 등을 반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시편 45편’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2절도 제대로 해석이 됩니다. ‘성자 예수님’에게 임한 ‘성부 하나님’의 ‘아름다운 은혜, 영원한 복, 십자가의 복’을 이 말씀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3절 이하에 기록된 ‘왕’을 향한 찬양을 보면서 “아무리 왕이라도 이건 좀 과한 것이 아닌가?”라는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왕과 왕비의 결혼식 테마가 요한계시록의 ‘어린 양의 혼인 잔치’와 연결됩니다. 어린 양이신, 신랑 예수님과 그의 신부인 성도의 영적 결혼으로 이어집니다.
3. 이 관점을 보면 10~11절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왕비(두로의 딸)’에게 왕(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10~11절을 다시 말하면 이렇습니다.
“두로의 딸이여! 지금 너에게 ‘왕비가 되느냐 마느냐’문제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네가 섬기던 우상들(네 백성, 가족, 전인격, 자아까지)을 버리고 참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섬기고 경배해야 한다.”입니다. 네,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결혼식 찬가’가 아니라, 일생일대의 결단을 요구하는 ‘결단의 촉구’입니다.
원래 하나님을 몰랐던 우리! 지금도 십자가에 붙들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방황하는 인생들을 애타게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은 곳곳에서 들립니다.
무엇보다 성경 기록의 사이 사이에 ‘그 간절한 음성과 마음’이 스며 있습니다. 어떤 말씀을 읽고 묵상해도 십자가로 부르시는 주님의 메시지가 들린다면 제대로 읽은 것입니다. 껍데기 축복이 아니라, 알맹이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것인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Komentar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