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작성자 사진Hyung Yun

2월 23일 2021년 수요일 묵상

본문: 시편 46편 1~11절


1.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키심을 노래한 시편 46편은 ‘복음송의 노랫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나름 익숙한 내용일 것입니다.

시편 46편은 표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라 자손(찬양을 담당하는 레위지파)’가 기록했다는 것과 함께 ‘알라못(Alamoth)에 맞춘 노래’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알라못’의 어원은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알바’의 복수형입니다. 그런데 시편에서는 음악형식을 나타내는 데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시편 46편의 내용과 ‘젊은 여성들’이라는 ‘알라못’의 의미를 생각해볼 때,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군대 앞에서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시편 46편을 불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저는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무엇보다 5절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성(예루살렘 및 이스라엘 온 땅)’을 흔들림 없이 지키신 것을 기록합니다.

전쟁을 위해 군대가 떠난 곳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키셨음을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동시에 출전하는 군대에게도 여호와께서 가족들이 남겨진 성읍을 지키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수비가 가장 취약한 ‘새벽 시간’에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인은 6~9절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지를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2. 마지막으로 시인은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기록합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10절)” 성경구절을 인용하듯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면 모를 리가 없는 출애굽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출14:13)는 말씀으로 연결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적으로 처했던 가장 절체 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목격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 당시 모든 이스라엘 남녀노소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건이었습니다.

모세5경을 제대로 아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홍해 사건의 영적 의미와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본 사람이라면 시편 46편을 읽으며 홍해 사건이 떠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3. 추격하는 애굽 군대를 불기둥으로 막으셔서 이스라엘의 배후를 지키시는 하나님! 그들을 집어삼킬 듯한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모두가 홍해를 건넌 뒤 뒤쫓는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신 하나님!에 대한 영적 기억이 생각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건지실 것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은 지금 내가 처한 물리적 상황에서 건지시는 것 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궁극에 있을 전인격과 영혼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치열한 현실의 삶, 전쟁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내가 떠나온 ‘그 성(본향)’을 평안히 지키시고, 마침내 그곳으로 인도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가 우리의 영적 배후를 든든히 지키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분명 이 땅을 살아갑니다. 현재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 앞에 닥친 수많은 일이 있습니다. 길흉화복(吉凶禍福),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모든 과정을 겪습니다. 그 속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버티고 버티다 쓰러진 것 같았지만, 결국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붙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2~3절에 기록된 ‘천지진동(天地震動)의 상황’은 분명,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판단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에 의한 믿음의 선포입니다. (원어로 보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가 2절 앞에 위치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이성에 근거한 계산, 인간이 추론한 합리성과 가능성으로 예상한 판단, 각 사람이 가진 기질의 어떠함으로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모르게 흘러나온 믿음의 고백, 신음에 가까울지 모르는 믿음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인도할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조회수 18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