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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2월 1일 2021년 월요일 묵상

본문: 누가복음 10장 17~24절


1. 오늘 말씀은 따로 세운 ‘70명의 제자들’이 돌아온 뒤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70명의 제자는 70명이라는 인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 문화에서 7과 10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제자들이 완전하고, 완벽하고, 대단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복음이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의 숫자 70, 12에 치중하면 ‘우월감’ 속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7~20절은 제자들이 돌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시는 부분입니다. 21~22절은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감사의 기도를 하십니다. 23~24절은 제자들을 향한 일종의 당부이며, 격려입니다.

2. 본문 17절을 보면 제자들이 상당히 흥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들을 통해 나타난 놀라운 일로 인해 감격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 “주여, 주의 이름이며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종교적 흥분에 고취되어 자칫 ‘퇴마(退魔exorcism)’를 위한 도구로 본문의 내용을 이용하게 됩니다.

이 본문 속에 나타난 제자들의 태도는 17절을 한글로 읽었을 때 다가오는 느낌이 아닙니다. 헬라어의 의미를 살려 다시 번역하면 “그 귀신들도 항복했다 우리를 향하여 그 당신의 이름 안에서”입니다. 원문에서는 ‘그 당신의 이름 안에서’를 문장 뒤로 빼내어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강조합니다.

‘당신의 이름이면!’으로 번역된 한글로 보면 귀신을 쫓아낸 종교적 흥분감에 한 것 고취된 제자들이 자랑하듯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에게 ‘예수의 이름’이라는 영적 무기가 주어졌고, 그것으로 귀신들을 굴복시킨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누가복음)은 ‘예수의 이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담담하게 제자들이라는 사람에게 그 능력이 임한 것보다 성경을 읽고 있는 독자,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의 이름’ 안에 있는 참 능력과 은혜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본문에서 ‘귀신 쫓음’보다 중요한 것을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20절입니다. 여기서도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너희 이름”은 70인 제자들의 이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귀신을 쫓는 등의 행위를 한 선택된(?)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어떤 특별한 책에 기록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말하는 공로자 명단, 명예의 전당 따위에 기록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심령’에 있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심령에 기록됩니다. 십자가 복음을 마음판에 새긴(고후3:3) 사람들이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읽으며 ‘기적과 능력’을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예수의 이름’을 심령에 새긴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제자들의 시선을 귀신 쫓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 하늘에 새겨진 이름으로 바꾸신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십니다. 21~22절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이제 아실 것입니다. 21절의 ‘하나님께서 숨기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의 이름 안에 있는 생명과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이단들이 악용합니다. 자신들의 괴상한 교리와 거짓말을 포장하는데 사용합니다. 사람들을 혼미하게 하는 도구로 악용합니다.

21절의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를 기성교회의 목회자, 성도들이라 말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당연히 사이비 이단 교주를 따르는 ‘사람들’로 설명합니다. 거기에 더해 22절의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를 교주 자신이며, 자기가 풀어준 성경 해석이 진짜라고 속입니다.

역기서 “아들(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네,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대속의 은혜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이 대속의 제물이 되시는 것입니다.

결국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가 누구입니까? 네, 예수님의 소원인 십자가 대속의 은혜의 완성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계시’의 뜻은 ‘열어서 보여주는 것’이 맞습니다.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를 통한 대속의 은혜의 완성이 드디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열렸습니다. 그 사건이 성경(신약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4. 사이비 이단들의 거짓말과 유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23~24절을 가지고 장난칩니다. 23절의 “너희가 보는 것” 무엇입니까? 귀신 쫓아내는 각종 기적입니까? 성경을 가지고 계시를 풀어준다며 희안한 말하는 그들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24절의 ‘너희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선지자, 임금’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를 살았던 ‘선지자, 임금’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메시야)’께서 직접 이 땅에서 오셔서 약속된 ‘십자가 대속의 은혜의 완성’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믿음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붙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조용히 말씀하신 진짜 의미는 “지금 너희가 얼마나 복되냐? 나 예수를 직접 보고, 나와 함께 먹고 마시며, 나와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냐? 너희가 처한 상황, 환경 등에 휘둘리지 말고, 나를 바라보아라!”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비록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고, 듣지 못했지만… 기록된 말씀, 성령의 조명으로 예수님을 보았고, 만난 우리에게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모든 것을 이기고,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넘어서게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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