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15장 1~10절
1. 오늘 본문은 내일 읽으실 본문과 하나의 흐름입니다. 같은 주제입니다. ‘잃어버린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함, 예수님의 마음이 세가지 비유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내일 본문까지 한 번에 읽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까지 누가복음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달라진 영혼의 시각으로 이 본문을 묵상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하시는 생명의 말씀, 전적으로 내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믿음으로 바라본다면 ‘잃은 양 한 마리,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죄인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아니라, ‘나’입니다. ‘저들’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2.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상황과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1~2절을 머리 속에 그려보십시오. 2절의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라는 것으로 볼 때 누군가의 집에서 일어난 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집일 가능성이 클까요? 저는 ‘바리새인 혹은 서기관 중 누군가의 집’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면, 2절의 “수군거려”라고 번역된 ‘diagogguzo’는 ‘수근거림’보다, ‘불평하다, 투덜거리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어에 뜻에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이해처럼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을 영접하고 식사를 드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비난하며 수근거린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군거려”를 ‘불평’으로 이해한다면 달라집니다. 13장 14절의 ‘회당장’과 유사한 반응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집으로 초청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예수님을 초청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궁금증과 관심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들의 집으로 불렀는데, 거기에 ‘세리와 죄인들’이 따라온 것입니다.
따라온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사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식사를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불평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왜 이 사람들까지 함께 데리고 오십니까?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라는 말이 그들이 내뱉은 ‘수군거림(불평)’의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3. 그렇게 이 말씀의 배경을 이해하고 본다면, 오늘 본문의 비유 ‘양 한 마리, 잃어버린 드라크마, 회개해야 할 죄인 한 사람’은 ‘세리와 죄인들’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수군거림을 듣고 이 세가지 비유를 떠올리신 것이 아닙니다. ‘세리와 죄인들’을 비난하는 그들의 말을 듣고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난, 잃어버린 너희(바리새인, 서기관)를 부르기 위해 왔다. 너희도 회개해야 할 죄인들이다.”라는 것을 말씀하러 그 자리에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바리세인도, 서기관도, 세리도, 죄인도’ 그냥 다 ‘잃어버린 양’입니다. 누구를 향하여 불평, 불만, 수군거림을 할 겨를 이 없이 오직 십자가 은혜만을 구해야 할 ‘잃어버린 영혼’입니다.
오늘 말씀을 새겨야 합니다. 엄격하게 나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종교성은 무섭습니다. 인간이 가진 장점이자 치명적 약점이 ‘익숙함’입니다. 종교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나를 매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종교화석(宗敎化石, religious fossil)’이 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증후군’을 조심해야 합니다. ‘신앙이 좋다.’라고 여겨지는 사람은 ‘바리새인, 서기관 증후군’의 최고의 위험 그룹이라는 것을 철저히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해야 손들고 십자가로 달려갑니다.
10절의 말씀을 멀리 적용하지 않겠습니다. “바리새인 증후군에 노출된 죄인, 지민철이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등불을 켜고 집을 쓰는 여인의 마음(8절)으로 ‘제가 놓친 죄악 된 본성’을 찾기 위해 성령의 빛, 말씀의 빛, 십자가의 기준으로 제 심령과 삶을 살핍니다. 단 하나라도 돌이켜 회개하는 삶을 살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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