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2장 1~11절
1. 오늘 본문을 기점으로 ‘요한복음’의 시선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집중됩니다. 1절의 기록처럼 ‘유월절 6일 전’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피하여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음모와 계략을 성경의 예언을 완전히 성취하시는 것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인간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이루어집니다. 선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건, 악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건 상관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루어질 뿐입니다.
어제 본문에서도 읽으셨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자기도 모르게 ‘한 분 예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대신해 죽으심으로 ‘구속(구속, redemption)’을 완성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공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예수님의 메시야(그리스도) 되심을 스스로 선포해버렸습니다(요11: 49~52).
2. 어쩌면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마리아’!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지극히 비싼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발을 닦은 여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7~8절을 가만히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것에 대한 ‘그렇게 여겨 주시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마리아’의 행위가 기준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행위를 그렇게 여겨 주시는 예수님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두가지에 묶여(?) 해석을 하려 합니다. 첫째, 마리아는 ‘뭔가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고 예수님께 용서받은 그렇고 그런 여인, 죄인이었다.’라는 생각입니다. 두번째, ‘값비싼 것을 예수님께 드렸다. 큰 헌신을 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녀가 누구였기에,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그렇게 예수님께 값비싼 것을 드릴 수 있었는지 궁금해합니다. 어떻게 그 여인이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위대한 행동을 했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3. 그래서 그녀의 과거를 추적(?)하려 합니다. 마태복음 26장, 마가복음 14장, 누가복음 7장에 기록된 같은 듯 비슷한 사건과 오늘 본문의 ‘마리아’를 연결 지으려 합니다. (특히 ‘누가복음 7장 37절에는 “죄인인 한 여자”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인 아니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기면 안 됩니까?! 왜 꼭 큰 죄를 지어야만 값비싼 것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자아의 욕심대로 살아가는 것, 도덕의 껍질을 썼을 뿐 본질은 범죄한 인간인 것은 값비싼 것을 드리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입니까?!
우리에게 깊이 뿌리 박힌 ‘자기 중심적 성경해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성경에서 좋은 스토리, 좋은 인물은 나를 향하는 생각! 나쁜 스토리, 나쁜 인물은 저들을 향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4. 물론, “값비싼 향유를 부은 ‘마리아’가 무슨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했을까?”라는 궁금증도 중요합니다. (갑자기,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자신을 단장하던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렸다. 여러분을 위해 사용하던 것들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라며 기막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던 어떤 분도 기억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마리아의 행동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7절을 곱씹어 읽어보십시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는 예수님의 예언적 선포입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유월절’ 전날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이라는 ‘세례 요한’의 선포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결국,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 성령 강림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그 날’이 되어서야 ‘마리아’를 포함한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감격은 ‘오늘’의 감격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향유를 부어드리고, 머리털로 씻은 날에 흘린 눈물과 ‘그날(십자가 사건 이후, 성령 강림 이후)’ 흘린 눈물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다가올 ‘그날’! 십자가 붙든 삶의 결과를 바라보며 더 감격하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친히 뵈옵는 그날! 우리가 알게 모르게 행했던 그 일!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이 이토록 놀라운 것이었음에 더욱 감격하게 될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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