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12장 49~59절
1. 누가복음 10장 이후 성경의 기록은 기적과 이적에서 예수님의 가르침, 말씀 중심으로 서술 됩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은 십자가의 고난과 재림에 합당한 삶, 회개와 돌이킴의 삶에 대해 연속성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단편적으로 보면 자칫 오해하기 쉽습니다. (지금까지 많이 오해했습니다.) 특히, 49~53절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당하는 고난, 그 중에서도 비기독교인 가족과의 관계가 나쁠 때 적용합니다.
가족구성원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함으로 발생하는 가정 불화 마저도 복음을 위해 당하는 고난으로 승화(?)시키는데 단골로 이용하는 본문입니다. 이단들이 악용하는 대표적 본문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저런 마찰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몰이해로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본문을 자기 고난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49~53절의 핵심은 ‘불화, 마찰, 분란’이 아닙니다. 50절의 ‘세례(침례)’입니다. 그리고 ‘세례’는 종교 행사가 아닙니다. ‘죽음’을 의미합니다.
물에 완전히 잠기는 의미는 ‘죽었다’입니다. 물에서 다시 건지는 것은 ‘다시 살아남’입니다. 즉, 물에 잠기며 ‘나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보혈에 잠겨 죽었다.’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물에서 건져지며 ‘이제는 내가 아닌, 예수로 삽니다!’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내 자아가 매일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이 일어납니다. 성령의 불이 내 속에 죄악된 본성과 자아를 태우는 일이 매일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불이 우리 안에 임하면 화평할 수 없습니다. 내 속에 죄로 오염된 자아와 거룩하신 성령이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나, 승리는 예수님의 것입니다. 성령께서 반드시 성화를 거쳐 영화의 단계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내 죄가 성령의 불로 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산불이 옮겨 붙는 것처럼 성령의 불태우시는 역사가 주변으로 전파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49~53절을 보지 않으면 ‘가정 불화 합리화’라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2.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은 계속 이어집니다. 54~56절은 단순히 ‘재림의 때와 징조’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특히, “외식하는 자여(56절)”를 통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악한 세대라고 밖에는 정의할 수 없는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는 기독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57절 이하에서 끝까지 십자가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과 화해(화목)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57~59절 역시 많이 오해하는 본문입니다. 57절의 “옳은 것(헬라어: dikaios)”은 사람의 이성으로 판단하는 ‘옳음’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옳음, 의로움’은 ‘십자가 대속의 은혜’뿐입니다. 그 은혜를 완성하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어떤 분쟁이 있을 경우 ‘세상 법정에 호소하기보다 서로 화해하는 것이 좋다.’라는 것을 권면할 때 58절 상반절을 많이 인용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십시오. 분쟁과 관련하여 패소할 것을 이미 전제하고 있습니다. 딱 잘라 말하면, “넌 무조건 재판에서 패배할 것이니 화해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입니다.
네, 이 재판은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는 재판, 마지막 심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없으면 영원한 멸망이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59절은 인간의 그 어떤 노력으로 우리의 죄성은 지울 수 없고, 가릴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죽을 것처럼 붙들라’는 의미입니다. (에베소서 2장 12~16절 참조)
3. 말씀에 대한 오해는 모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제대로 알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만큼 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겸손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낮은 마음으로 엎드려야 합니다.
읽고, 엎드려 기도한 만큼 우리의 삶이 통로가 되어 말씀이 흘러가야 합니다. 입이 아니라, 삶과 전인격으로 예수님의 살아 계심이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안 된다고 포기하고,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못하는 내 자아, 그러기 싫어하는 내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죽기를 각오하는 기도는 이럴 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붙들린 마음으로 성경을 묵상하십시오. 사람의 오해를 넘어 성령의 이해로 나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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