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3장 15~38절
1. 오늘 본문에서는 세례 요한에 대한 이야기(15~20절)가 마무리된 뒤 다시 예수님에 대한 기록,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계보(23~38절)에 대해 기록이 이어집니다.
15절을 보시면, 당시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모습을 보고 그토록 기다리던 ‘그리스도(메시야, 구원자)’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의 지배와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상, 사회 전반의 암울함으로 인하여 ‘구원자’가 나타날 것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차이가 있습니다. 백성들이 생각한 ‘그리스도(구원자)’와 하나님이 생각하는 ‘그리스도’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원어로 보면, 15절 “그리스도” 앞에 ‘정관사’가 있습니다. 백성들이 생각한 ‘그(the)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해방을 주는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그 옛날 위대한 다윗 왕처럼 정치, 종교, 군사적 탁월성을 지닌 구원자가 올 것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생각한 ‘그 그리스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대속의 제물로 드려지는 분이었습니다. 위대함과 전혀 상관이 없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하나님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2. 백성들은 16절의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우와, 겸손하다.’라고 생각했을까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16절을 보면서 ‘세례 요한’의 겸손에 대해 말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을 높이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남을 높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을 보면서 어떤 면에서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그 그리스도’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또 어떻게 보면 ‘아닌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사람들이 16~17절을 보면서 안도했을 것입니다. “그럼 그렇지, 저런 모습은 아니지, 갑옷에 멋진 말을 타야지… 낙타털옷은 무슨… 맞아, 저 사람은 ‘레위지파’출신이지,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이니까 아니지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세례 요한이 풀기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신발끈을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위대한 왕, 장군, 지도자의 모습을 그렸을 것입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것도 그저 자기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불태워질 쭉정이에서 나 자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등을 제외한 저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실제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일으키시는 기적의 결과물에 관심이 있어서 쫓아다녔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토록 환호했다가 재판정에 힘없이 서신 모습을 보며 죽이라고 소리질렀던 것이 그들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을 ‘그 그리스도’로 생각했던 백성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쫓아다니는 사람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도 순간 ‘십자가에 내가 못 박힘’을 놓치는 순간 저의 죄악된 본성으로 이해하는 ‘그 그리스도’를 쫓아가게 됩니다.
이 질문 “내가 쫓아가는 ‘그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내가 바라보는 ‘그 그리스도’는 어디에, 누구대신 못 박히셨는가?”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3. 성령 하나님께서는 누가를 통해 ‘그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분명히 기록합니다. 그것이 23절 이하에 기록된 ‘예수님의 계보’입니다.
이 계보(족보)는 마태복음의 기록과 반대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선조 즉, 아브라함부터 출발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의 기록은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에서부터 출발하여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지나 ‘노아, 아담’까지 기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하나님’으로 마무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시작은 사람의 족보처럼 말하지만, 결국 하나님의로 마무리함으로 ‘완전한 인간,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특히, 23절의 “사람들이 아는 대로…”의 원어적 의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요셉의 육신의 아들’입니다. 보통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면 누가 있습니까? 네,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를 족보를 거꾸로 기록함으로 읽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우리의 ‘그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가 바로 잡혀야 합니다. 내 생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려는 마음의 시각이 교정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 받는다는 것은 ‘원하는 그 일’이 하나님의 신적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묘책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그 그리스도, 그 십자가’에 대한 영적 시각이 바로 잡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그 그리스도, 그 십자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우리의 굽어진 모든 것에 임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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