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2장 21~40절
1.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영유아기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모두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구원사의 흐름 속에서 선택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21~24절은 모세의 율법을 따라 할례와 정결 예식을 치른 것을 정확히 기록합니다. 25~35절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시므온’이라는 경건한 사람이 예수님과 하나님을 찬송한 내용입니다. 36~38절은 ‘안나(‘한나’의 헬라어식 발음)’라는 여자 선지자에 관한 기록과 하나님의 구원을 기록합니다. ‘안나’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것은 선지자에 합당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록을 보면 마치 한 사람 씩 만나 인터뷰하는 것처럼 기록합니다. 물론, 고령의 ‘시므온’과 ‘안나’를 ‘누가’가 직접 만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이 증언들에 대해 누가는 직업과 성경 등의 특성을 이용해 교차 검증, 증거 수집, 직접 탐사 등을 통해 검증된 기록을 로마의 고위 공직자였던 ‘데오빌로’에게 기록하여 보낸 것입니다.
이런 것이 ‘성령의 유기적 영감’입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계시로 성경을 기록하시거나, 사람을 그저 기록하는 도구로 기계적으로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 기록자의 특성과 배경, 달란트 등을 활용하시고, 세밀하게 간섭하셔서 사람과 함께 기록하신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을 보면서 주의?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너무 ‘시므온’과 ‘안나’를 ‘종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신앙인으로 추켜세우지 말자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예수님을 향한 예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 오래오래 사는 축복을 주셨다’라는 식으로 해석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누구를 향하고 있을까요? 물론, 예수님이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탄생으로 여전히 마음의 이런저런 생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요셉과 마리아)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마리아, 아무리 주의 천사가 나타나 예언했지만 믿기 어려운 아기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이런 저런 갈등과 고민이 있지만, 묵묵히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 올라가 할례와 정결 의식을 행하는 젊은 부부 마음을 위로하시기 위해 ‘시므온’, ‘안나’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인도하심(touched)으로 시므온과 안나를 만난 두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아기 예수님의 출생을 복잡한 심정으로 감당하는 두 사람이 성전에서 시므온과 안나를 통해 들은 말은 생명을 살리는 회복의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3. 위대한 선지자(?)의 어마어마한 예언으로 볼 수도 있지만, 노인이 된 두 사람의 말은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위로였을 것입니다.
고래고래 큰 소리를 내지르는 웅변식의 선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28절) 아이가 깰까 조심하며, 입가에 함박 웃음을 머금고 비밀 이야기를 하 듯 나지막이 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예수님께서 완성하실 범죄한 인간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이루실 십자가 대속의 은혜, 속량(贖良, redemption))의 은혜에 관해 말합니다.
우리는 자꾸만 십자가의 은혜를 떠들어대려 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외부 상황 변화에 이용할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 생각합니다.
내 어두운 마음을 비추시는 은혜, 내 패역한 심령을 찔러 쪼개기까지 수술하시는 은혜, 내 가려진 마음의 생각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시는 은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35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한 거듭난 사람에게 일어나는 처음 현상임과 동시에 가장 중요한 현상에 대해 명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믿음으로 기도한다며, 징징대 듯 우기는 그 것이 아닙니다. 내 어둡고, 교묘한 본심이 성령의 빛에 드러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아파도 말씀의 검으로 내 죄악된 본성이 잘려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성령의 이끌어 주심 가운데 있는 성도의 특징인 줄 믿습니다. 이것 만이 우리의 삶과 영혼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인 줄 확신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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