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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1월 4일 2020년 월요일 묵상

본문: 누가복음 2장 1~20절


1. 2021년을 시작하며, 누가복음을 살펴봅니다. 기록자인 ‘누가(Luke)’는 의사(골4:14)이면서 역사학자였습니다. 그는 사도행전의 저자이며, 사도 바울의 선교 동반자(행16:10~14)였습니다.

따라서 누가복음에는 의사와 역사학자라는 직업적 특성이 드러나 있습니다. 병을 진단하는 의사처럼 치밀하게 기록합니다. 당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기록합니다. 읽어보면 예수님의 행적을 되짚어 방문하고, 증인들을 만나서 기록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도 그런 특징이 잘 나타납니다. 로마의 초대 황제였던 ‘가이사 아구스도(Caeser Augustus)’가 내린 ‘호적령’은 그 당시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특히, ‘누가복음’의 개인 수신자인 ‘데오빌로’의 경우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로마의 고위 관료였던 그는 당연히 그렇습니다. 또한 2절의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을 언급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 및 행정적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데오빌로’가 마음만 먹으면 ‘수리아 총독’에게 연락하여 예수님 당시 ‘로마 호적’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할지역인 ‘베들레헴’과 부모의 이름을 정확히 기록한 것은 사실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2. 한 사람, ‘데오빌로’를 위한 복음서의 기록이 예수님의 탄생의 역사적 진실성을 이처럼 변호하고, 증명하게 되리라고 저자인 ‘누가’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편지가 성경이 되어 예수님의 탄생과 예수님의 일생에 대한 진리의 기록이 될 줄은 정말 몰랐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또 ‘뉴저지 주님의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도 이렇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매일 붙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거기서 돌이킨 삶의 결과, 그 열매가 우리도 모르게 주변을 변화시키고,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네, 알면 안 됩니다. 알면 인간의 본성이 작동합니다. 인간의 죄성이 그것을 오염시킵니다. 난 매일 십자가 앞에 벌벌 떨며 엎드리고, 돌이켜 변화되기 위해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 밖에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나를 통해, 우리 교회를 통해 뭔가 일어나야 합니다. (더 엄격히는 그런 이야기도 듣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몰라야 합니다.)

3. 오늘 본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한가지 사실은 ‘두려움’의 정의입니다. 지금 기독교와 성도들의 문제 중의 문제는 ‘축복’에 취해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임하니 어떤 반응이었습니까? 목자들이 왜 무서워했습니까? 주의 영광이 비춘다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영화에 나오듯 뭔가 신비한 것이 오니까 질려서, 그 이상한 것이 나를 죽일 까봐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빛이신 하나님이 어둠인 나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빛이 비췸으로 내 속의 어둠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온갖 인간의 껍데기로 가린 내 본성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절대 절망의 밑바닥인 줄도 모르던 내가 하나님의 빛으로 인하여 그런 실존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인간의 본성과 죄성이 보이면 ‘아이고, 난 죽었구나’라는 탄식이 터지게 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진짜 예수님을 만나면, 가장 먼저 자신의 죄성에 대한 절망에 몸서리치게 됩니다. 그저 단순한 ‘눈물 찔끔’흘리는 회개를 가장한 후회에 머물지 않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사람이 “당신은 하나님 앞에 죄인 인줄 믿습니까?”라고 질문한 뒤, 돌아오는 “예”라는 대답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 질문과 대답을 부추김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가만히 둬야 합니다. 자신의 본성이 성령의 빛으로 드러나 깊은 영적 갈등 속에 있는 것을 묵묵히 지켜봐야 합니다. 냉정한 것 같고, 사랑이 없는 것 같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직접 그 사람에게 간섭하시는 기회를 내가 차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4. 혹시 여러분이 가장 신앙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 반대로 신앙이 가장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시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그럴까요?

영적 고민, 갈등, 고뇌 없이 교회를 다니는 가벼운 신앙인이 되면 안 됩니다. 곧 흔들려 넘어집니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저 사람은 그런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제일 위험합니다.

십자가의 진리, 하나님의 임재, 성령의 충만함이 내게 임하면 하나님의 빛과 거룩함 앞에 굴복하여 엎드리게 됩니다. 남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누가복음을 묵상합니다. 누구를 향한 복음이 아니라, 나를 향한 복음입니다. ‘데오빌로’는 우리 자신입니다. 1장 4절의 기록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복음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고, 십자가의 진리를 아는 것에서 실제 나를 못 박아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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