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9장 28~36절
1. 오늘 본문은 ‘변화산 사건(마17, 막9, 눅9)’에 관한 기록입니다. 28절의 ‘산(변화산)’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인 ‘헐몬산’입니다.
산의 높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고대 유대인들에게 산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특히, 모세를 통해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것처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십자가 언약)을 맺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특히, 구름이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강조합니다. (34절)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기록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적 권위와 정체성을 선포합니다. (35절)
또한 지금까지의 누가복음에 기록된 모든 기적으로 예수님께 관심을 보인 독자의 영적 시선을 십자가로 모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참 많은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좀 집중하고 싶은 것은 31절과36절입니다.
2. 오늘 본문 속에는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용모가 희어지고, 광채가 났다는 땅의 언어 외에는 도무지 표현할 길이 없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구약시대의 대표자인 ‘모세’와 ‘엘리야’가 만나서 나눈 대화가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영광 중에 나눈 대화의 주제’가 무엇이라고 기록합니까? (31~32절) 네, ‘예수님의 별세, 십자가 죽음’입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영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걸 행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을 탁월하게 해냈을 때 ‘영광스럽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죄인이 여전히 죄인일 때, 그 죄인의 죄를 대신해 자기 목숨을 대신 제물로 드린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진정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십자가 대속의 은혜야 말로 하나님만 계획하실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십자가 지실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존재도 생각 조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어떤 종교, 사상, 철학, 문화, 지식 등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영광(물론, 사람 생각의 영광입니다.)을 그토록 쫓아다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루실 진정한 영광인 십자가 죽음(별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깊이 졸고 있었습니다. (32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네, 대다수의 사람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십자가를 이야기하면 좁니다. 졸면 다행입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말하는 것을 지겨워(?)합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지, 그 분의 은혜 가운데 붙들려 있는지를 점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자기부인(self-denial)’이 감사하고, 기쁘다면 정상입니다. 다행입니다. 그것이 아프고 힘들지만, 끝까지 ‘십자가에서 나를 버리는 것’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런 기도가 기쁘다면, 그렇게 조금이라도 주님 닮아간다면 안도의 큰 숨을 조금 쉬어도 됩니다.
3. 다행히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성령의 붙들어 주심과 각성하게 하심을 통해 깨어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좀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33절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베드로의 말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성경적 근거는 없습니다. 그저 아직은 뭐가 뭔지 정확히 모르는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의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본문의 결론은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이 가리키는 그 끝에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로 36절입니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라는 36절의 내용은 마태, 마가복음에도 동일하게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누가복음의 기록에 특징이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다른 문법적 기교를 통해 표현함으로 ‘오직 예수’라는 성경의 결론을 더 강조합니다.
“보이더라”로 번역된 헬라어 ‘heurisko’는 ‘발견하다(to find, discover, come up)’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직설법 아오리스트 수동 3인칭 단수’로 기록합니다. 즉, ‘예수만 발견되었다.’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이런 문법적 요소와 단어를 사용하여 기록한 누가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까지 기록한 수많은 기록은 당신이 예수님만 발견할 수 있도록, 당신에게 예수만 발견되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라는 누가의 마음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며 경험한 것들, 받은 것들, 이룬 것들이 아무리 엄청난 것이라고 해도 결국 ‘예수님, 그 분의 십자가’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허망한 것입니다.
우리의 전인생과 전인격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혀 그 분과 함께 죽고, 그 분이 내 안에 사시는 것이 아니었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분의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 자기가 발견되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종교생활을 통해 자기를 드러내고, 부각시키는 행위를 철저히 경계합니다.
처음도 그러면 안 되지만, 백 번 양보하여 처음엔 보이는 것, 잡히는 것, 누리는 것을 위해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해야 합니다. 달라져야 합니다. 결국에는 ‘구속한 주, 예수만’ 보여야합니다.
저와 여러분, 뉴저지 주님의 교회를 통해 ‘오직 예수’라는 이 고백이 주변에 스며들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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