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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1월 18일 2022년 화요일 묵상

본문: 요한복음 6장 1~15절

1. 주말에 읽으셨던 5장 19~47절은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선포(설명)하시는 것입니다.

동시에 1장~5장 18절의 선포, 대화, 사건 등이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이라는 것을 일관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심판)’에 처한 인간들을 ‘생명(영생)’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가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서 인간이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요5:24~29)

시간을 내셔서 5장 19~47절을 천천히 몇 번 반복해서 읽어보십시오. 저는 개인적으로 38~47절을 읽으며 많은 묵상이 있었습니다.)


2. 요한복음 6장은 긴 내용입니다. 71절까지 하나의 주제로 흘러갑니다. ‘생명의 떡’입니다. 이것을 놓치고 읽으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오병이어五餠二魚)’로 약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은 기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2절의 “표적(sign)”을 기억해야 합니다. ‘표적’ 자체,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이 가리키는 실체가 무엇인지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생명의 떡)’입니다. 표적이 가리키는 진짜 실체를 6장 22~71절까지 아주 상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3. ‘오병이어’의 표적은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모두 등장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만 “생명의 떡(22~71)”까지 연결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을 상세히 다 기록했습니다.) 4절의 기록처럼 “유월절(하나님의 어린 양, 무교병…)”이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려줍니다.

사복음서 중 가장 늦게 기록된 ‘요한복음’이 없었다면 ‘오병이어’를 그냥 ‘기적’ 수준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사람 많습니다. 육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땅의 것을 충족히 받기 위해, 그런 것이 목적이 되어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구원에 대한 희안한 자기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축복자판기 수준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4.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대속의 은혜’를 완성하시고, ‘영원히 주리지 않는 생명의 떡’이 되신다는 것까지 나가야 합니다.

거기까지 나갔다면, 다시 육신의 것에 마음 빼앗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연약하여 넘어졌더라도 다시 말씀이 들릴 때, 십자가 앞으로 나가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나의 영혼을 채워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첫번째이며, 우선되는 우리 삶의 목적, 기도의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5. 예수님은 인간의 무지함, 연약함, 어리석음 등을 다 알고 계십니다. 딱 그 수준에서 생각하는 답답한 우리 모습, 범죄한 우리 모습을 잘 알고 계십니다.

‘빌립’과 ‘안드레’가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고, 바라보고, 대답할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6절의 “시험”은 ‘유혹’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게 해서 부끄러움?을 주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의 생각을 스스로 말하게 함으로 나중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니 ‘십자가, 부활 승천 사건’을 목격하고, ‘성경의 깨닫게 하심’을 경험한 뒤! 그의 영혼에서 “아, 그때 그 말씀이 이것이었구나!!!”라는 감사와 감격이 솟구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몰라도, 지금은 그 수준이라도, 지금은 어리석어도 결국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영적 감격과 감탄으로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삶을 한 걸음씩 이어가는 것이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삶’입니다. 예수님 알아가고, 닮아가는 삶입니다.


6. 참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병이어’의 표적을 오해하고, 예수님을 자기 생각의 왕(임금)으로 삼으려 하는 시대입니다. 18절의 상황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예수님의 왕 되심을 이해하고, 추구하고, 바라본다면 예수님은 피하십니다. 떠나 산으로 가십니다.

예수님의 왕 되심은 자아를 버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맡긴다는 것은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 때, 내 생각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히려 그것이 은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도 참 좋습니다. 나의 왕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더 깊이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육신의 떡’을 위해 모두가 그렇게 살고, 모두가 그 길을 갈 때, ‘생명의 떡’을 위해 십자가의 예수님으로 향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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