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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1월 18일 2021년 월요일 묵상

본문: 누가복음 6장 39~49절


1. 주말부터 읽으신 ‘누가복음 6장 20절’ 이하의 내용은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된 ‘산상수훈’을 축약한 것입니다.

오늘 읽으신 단락은 네 개의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다음 비유와 연결됩니다 39~40절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함으로 둘 다 파멸을 향한다는 것입니다. 인도하는 맹인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렇게 41~42절은 맹인들(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의 문제(들보)는 파악하지 못하고 남의 문제(들보)를 고치겠다는 어리석음에 대해 말합니다.

43~45절은 결국,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의 삶(열매)의 어떠함으로 증명된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46~49절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인생은 결국 ‘위기의 순간, 본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 닥치면 결국 무너지게 될 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산상수훈’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따라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삶의 열매가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심각하게 병든 것입니다. 나 자신을 전혀 돌아보지 못하는 그런 삶의 태도는 결국 나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2.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것은 ‘삶의 열매’라는 결과물보다, ‘삶의 열매’를 맺게 하는 근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39절의 ‘맹인’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지탄을 받는 목회자들이 아닙니다. 제가 ‘맹인’입니다.

그러면, 제가 스스로 ‘맹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 말씀을 더 열심히 연구해서 여러분을 가르치는 것에 집중해야 할까요? 제가 성경 말씀대로 살기 위해 혀를 깨무는 노력을 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가 맹인임을 인정하고,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의 인도함’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빛이신 그 분 앞에 나갈 수 있도록,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십자가 은혜를 붙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십자가에 먼저 못 박히는 것’입니다. 저의 부족함과 죄성이 십자가에 붙들린 바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저도 저의 부족함을 내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목회자로 부르심, 사명, 축복 등’으로 저를 좀 포장하는 것이 ‘권위’를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그것은 ‘맹인’인 제가 여러분을 ‘빛이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3. 저와 여러분, 눈에 있는 ‘들보’는 우리 스스로 뺄 수가 없습니다. ‘들보’가 있음을 인정하고 예수님 앞에 엎드리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나의 치명적인 단점, 그것이 ‘들보’인 줄 알면서도 도저히 인정하기 싫어서 남의 ‘티’를 ‘들보’로 부풀리고 있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이유는 내가 볼 수 없는 내 심령의 들보를 성령의 비추어 주심을 통해 발견하기 위해서 읽는 것이어야 합니다.

진짜 질문하고 싶습니다. 정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으로 성경 읽고, 기도하고, 예배 드릴까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을 너무 저차원적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저, 내 인생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최고의 신적 능력을 지닌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구원의 반석은 예수님 이시니, 예수님만 의지해야 천국 간다’라는 단순한 교리적 지식만으로 해석해도 안 됩니다.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라는 믿음의 선포와 행함 이전에 “나는 이 말씀대로 행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대로 행할 수 없는 저는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 말씀대로 행하시는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내 삶을 통해 ‘좋은 열매’가 나타난 것은 내가 아닌 예수님이 나 대신 사시기 때문입니다.”라는 깊은 영적 고백과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45절의 말씀을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내 속에 쌓인 악함을 봅니다. 그 쌓인 악함, 하나 하나를 십자가 앞에 못 박을 때, 내 속에 예수님의 선함이 하나씩 쌓여갑니다.

나의 악함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내 속에 임한 예수님의 선함이 흘러가는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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