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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1월 12일 2021년 화요일 묵상

본문: 누가복음 5장 1~11절


1.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어부 출신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이 이야기는 잘 알려진 것입니다. 감동과 기적이 함께 녹아 있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대할 때 기본적으로 몇 가지 선입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기를 많이 잡은 것처럼 우리도 말씀에 순종하면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순종하는 그들, 고기 잡는 미천한 사람들을 들어서 사람 낚는 어부로 쓰셨던 것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 살리는 일을 위해 쓰실 것이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제자들을 부르셨고, 지금도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귀한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쓰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조금만 다른 관점으로 본문을 보십시오. 이 기록을 누가 증언해주었을까요? 네, 당연히 베드로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이 증언을 할 때 어떤 태도로 고백했을까요? 네,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난 그날, 그 기억으로 돌아가는 베드로의 모습… 깊은 숨을 내 쉬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빈 배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다시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손질해야 했습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았으면 그물 손질 작업이 즐거웠겠지만, 그렇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시 잡을 수 있다는 희망 그러나 당장의 허탈감, 피로감 등등이 겹쳤을 것입니다. 이런 생활이 익숙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야고보, 요한)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의 표정이 어땠을까요? 마음이 어땠을까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걸 말로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이럴 땐 단순한 것이 좋습니다. 깜짝 놀람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두려움까지 느꼈을 것입니다. 정신이 멍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두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첫번째는 이미 예수님의 소문은 근처 사방에 퍼졌습니다. (눅4:37) 그러니, 이들이 예수님의 소식을 모를 리 없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열병’을 앓았던 시몬(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을 통해 이미 치유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 장모 치유 사건과 베드로를 부르신 사건에 대한 기록이 정확한 시간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많은 치유 사건 중 구속사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자 누가가 5장의 사건보다 앞에 배치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가만히 살펴보면 베드로의 행동(순종)은 범상치 않습니다.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장모가 치유를 받는 그 회당에 있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참 정체성과 십자가를 향한 일하심의 목적을 정확히 몰라도 ‘뭔가 있다. 저분은 다르다. 이게 뭘까? 그 분의 눈빛, 손길, 목소리, 가르침… 잊혀 지지 않는다.’ 등등 정말 많은 영혼의 질문, 깊은 영적 울림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난 이후, 영적 질문과 울림이 시작된 이후, 베드로에게 밤새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밤새 사람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잡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에 대한 영적 물음 때문에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3. 베드로의 이 영적 질문을 가지고 오늘 본문, 특히 8절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가 이해가 됩니다. 11절의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가 이해가 됩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있다면 8절의 고백이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진지한 고민, 십자가에 대한 깊은 묵상을 영혼으로 붙들고 있다면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자입니다. 이러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감당할 수 없는 자입니다.”라는 심령의 겸손과 그에 합당한 삶의 태도를 목숨처럼 붙들게 됩니다.

물론, 나의 연약함과 죄성으로 이 은혜를 쏟아버릴 때가 있지만, 다시 또 다시 십자가 앞에서 8절의 고백을 하며 엎드리게 됩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분명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물고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11절을 보면 분명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은 그 물고기를 다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는데도 말입니다.

물고기가 필요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관심입니다. 영혼의 방향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진짜 목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4.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가 처음 예수님 믿기로 했을 때, 그 동기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심지어, ‘구원받기 위함’이라는 목적 마저도 8절의 고백 앞에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익숙해지고, 찌들어버린 종교성의 찌꺼기를 걷어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는 반대 방향을 향하며 높아질 대로 높아진 우리의 마음에 ‘베드로의 처음 고백,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낮은 마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영혼 속에 이 마음과 고백이 머물고 있다는 것이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인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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