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작성자 사진Hyung Yun

1월 11일 2021년 월요일 묵상

본문: 누가복음 4장 31~44절


1. 누가복음 4장부터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약 3년 간의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됩니다. 흔히 ‘예수님의 공생애’라고 부릅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40일간의 금식을 통해 사탄 마귀의 시험을 승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금식하시면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지닌 신적 능력으로 감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가진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함으로 이기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사탄의 유혹에 반응하는 인간의 육체와 그 욕심은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영적 진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향한 예수님의 여정은 잘 아시는 것처럼 ‘갈릴리’를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갈릴리의 유대교 회당에서 시작됩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만히 살펴보면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받아들인 종교관습적 이해를 바꿔 주셨습니다.

‘대속의 은혜’에 대한 진리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종교의 틀에 갇혀 형식화, 관습화, 문화화, 세속화된 유대교의 껍질을 깨뜨리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은 어디를 가던지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고향 나사렛에서는 죽음의 위협도 당하셨습니다.


2. 오늘 본문의 기록은 사람 뿐만 아니라, 귀신들까지 예수님을 배척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가버나움’, 그러니까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이 때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 사람은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회당에서 유대교신자로 지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예수님은 그가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밝힐 때까지 그냥 말씀만 가르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소위 귀신 쫓아내는 사역을 한다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십시오. 귀신을 쫓는다며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의 종류 등으로 호령해가면서 자신의 능력?, 은사?를 드러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이십니다. 가만히 말씀만 가르치셨을 뿐, 귀신이 스스로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35절의 ‘꾸짖어’를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 대는 것이 아닙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는 말을 고래고래 소리치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꾸짖어’로 번역된 헬라어 ‘epitimao’는 단순히 누군가를 책망하고, 꾸짖고, 질타하는 의미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꾸짖는 사람의 엄중함, 명예, 자격, 책임 등이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꾸짖음을 통해 명예가 드러나는 것이 ‘epitimao’입니다.

예수님의 꾸짖음 속에 담긴 명예가 무엇입니까? 네, 십자가 대속의 은혜와 능력입니다. 죄로 말미암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입니다. 죄에 대한 책임을 십자가에서 대신 지신 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신적 명예, 십자가의 명예입니다.


3. ‘십자가의 명예’는 고래고래 소리지름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쌍시옷 발음이 강한 된 발음을 낸다고 귀신이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으시고, 병자를 고치신 능력은 ‘사랑으로 품어주심’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39절의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역시 구체적인 병을 지목하며 “열병은 떠나갈지어다!”라고 소리질러서 된 것이 아닙니다.

40절의 “그 위에 손을 얹으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안수기도’가 아닙니다. 그것이 과하여 두들겨 패는 듯한 ‘안찰기도(이런 용어가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호합니다.)’가 아닙니다.

‘손’으로 번역된 ‘cheir’는 ‘손가락, 손, 팔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손과 팔을 올려놓는 행동, 가벼운 포옹 등’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국 손을 얹는 행동보다 그 행동을 통해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예수님의 전인격이 더 강조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정상적인 전인격이 아닌 사람의 기도행위는 정말로 위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쫓아다니며 기도 받으러 다니는 등의 무속적 종교행위를 삼가야 합니다. 나의 답답함을 달래기 위한 일체의 기도행위를 조심해야 합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그 간절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 기도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손대고 계십니다. 품고 계십니다.

오늘도 품으시는 그 은혜 가운데 평안과 사랑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조회수 20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entario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