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41편 1~13절
1. 베드로후서가 끝났습니다. 시편을 묵상합니다. 시편 41편은 총 5권으로 구성된 시편의 첫번째 책(제 1권)의 마지막입니다. 42~72편은 제 2권입니다.
다윗의 시편인 오늘 본문의 배경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 다윗이 실제 중한 병에 들어서 이렇게 기도한 것인지, 아픈 자를 대신하여 기도하는 내용으로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아픈 사람들이 이 본문을 기도의 모본으로 삼아 기도하도록 하기 위해 기록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행위구원’의 함정에 빠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의로움’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도운 사람만이 병에서 나을 수 있다’ 혹은 ‘내가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도왔으니, 하나님 나를 치료해주십시오.’라는 식의 결론으로 가면 안 됩니다.
물론,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정말 좋은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고백한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는다면 하나님께 받은 것을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정말 귀한 일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마음과 물질로 돕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죄성에 물들어 있는 범죄한 인간을 통해 하나님의 선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한 일에 도구로 쓰임 받았다고 해서 나 자신이 선한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선하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사람은 사라져야 합니다.
2. 오늘 본문에는 인간의 악함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5~8절은 ‘안타까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향한 비난과 조롱, 저주의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인’이라고 지칭되는 사람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 나에게 악영향을 끼친 사람, 내가 무시하는 사람 등등을 향해 5~8절의 반응이 일어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의 죄성은 상대방의 불행에 대해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닥친 불행(?)을 보면 ‘어쩜 좋아…’라며 걱정해주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그럴 줄 알았다’라며 혀를 찹니다.
위와 같은 반응의 근저에는 ‘스스로의 우월감, 스스로의 의로움’이 깔려 있습니다. 난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더 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이런 ‘자기 의로움, 우월감’에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택합니다.
오늘 본문을 ‘가난한 자를 보살핀 사람을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종교적 해석에 빠지지 않으려면 4절을 기억하면 됩니다.
질병으로 대표되는 안타까운 일의 원인은 인간의 범죄에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치셨다. 하나님이 병을 주셨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찾아온 ‘생노병사’는 징벌, 처벌, 저주가 아닙니다. 인간의 문자로 표현된 성경의 기록 자체를 교육, 경험, 문화 등으로 규정된 인간의 이성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인간의 ‘생노병사’의 원인은 하나님이 죽음과 질병, 고통을 쏟아 부으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표현을 그렇게 할 뿐입니다.) 고통과 아픔, 죽음의 원인은 ‘떠남’입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인간이 먼저 떠났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통치와 다스림을 싫어 버렸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것은 하나님의 품을 거절하겠다는 선언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버린 인간의 운명은 태어나 하루를 살건, 10년을 살건, 100년을 살건… 사고와 병으로 육신의 생명을 마감하건, 불치의 병에 걸렸다가 다시 낫건, 자기 안방에서 인생의 끝을 맞이하건 결국 ‘육체의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3. 다윗이 10절에서 “나를 다시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라는 말은 단순히 육체의 생명을 연장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여전히 병상에 있으나, 나의 영혼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향해 일어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입니다.
병으로 인하여 낙심하고 낙담하는 심령, 원수의 비방에 마음 상하는 내 영혼을 일으켜 영원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네, 12~13절을 향하고 있습니다.
‘내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 붙드시는 하나님’을 다시 묵상해보십시오. 보이는 현상과 상황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의지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삶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가득한 사람만이 가능한 것인 줄 확신합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 그 분이 베푸신 구원 안에 있는 증거인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