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사기 15장 1~20절
1. 사사기 15장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를까요? 다양합니다. 제가 읽은 책 중에는 ‘삼손과 블레셋 사람 사이의 보복전(補服戰, battle of revenge)’이라는 표현도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이 이야기를 바라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대도 있습니다. 어쨌든 블레셋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결국에는1,000명의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삼손의 결혼은 블레셋을 치기 위한 위장결혼이었다. 아무도 삼손을 도와주지 않았기에 그렇게 밖에는 싸울 수 없었다.’라는 관대한 시각도 있습니다.
성경을 바라볼 때, 단정적인 해석을 조심해야 합니다. 익숙한 이해를 조심해야 합니다. 나의 성향에 끌리는 판단을 조심해야 합니다.
단정지어 판단하고, 고정된 시각을 벗어 버리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유로운 해석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죄인인 내가 ‘붙들 수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어제 성경을 바라본 나는 죽고 오늘 새로 살리시는 십자가의 생명! 어두운 눈을 밝히시는 성령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2. 삼손은 힘이 센 사람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면 ‘헐크(Hulk)’로 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헐크’도 ‘삼손’에게서 모티브를 가져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사기 15장은 18~19절 없이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우여곡절을 통해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죽인 삼손이 보이면 안 됩니다. 이런 삼손에게 끝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그가 부르짖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삼손을 통해 나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내 속에서 삼손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시는 무조건적인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더 엄중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3. 앞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삼손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영적 질문을 끝까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영적 질문을 내 삶에 늘 되물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블레셋을 쳐부수기 위한 위장결혼이라고? 그렇다고 해도 과연 그가 택한 방법이 옳은 것인가? 사사기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위장결혼’을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 여우를 잡아 밭에 불을 지르라고 하시지 않았는데…”라는 영적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답을 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영적 갈등, 영적 끙끙거림’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정말 이것이 옳은 것입니까?’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장미빛 결과물을 위해 걸어가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달라집니다. 내가 답을 내고 내가 걸어가는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엎드린 나를 하나님의 길로 이끄시는 선한 손길에 붙들리게 됩니다. (이것이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사실,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사사(Judge)’라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삼손’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끌립니다. 그래야 제가 하는 모든 행동에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충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야 어떻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하셨습니다.’라는 두루뭉술한 핑계(?)가 통하기 때문입니다.
4. 하지만, 또 십자가 앞에서 끙끙거렸습니다. 제 존재의 가벼움에 의지하지 않고, 십자가의 무게감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 18절 이하입니다. ‘심히 목마른 삼손, 아니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나귀의 턱뼈를 손에 쥐고 아무리 위대한 승리를 거두어도 여호와께서 주시는 은혜, 그 생명수 한 모금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삼손이며, 또 제 자신임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마시게 한 ‘물’은 ‘위로주(?)’가 아닙니다. 상급이 아닙니다. 생명 그 자체입니다. “삼손, 너 착각하지 말아라. 나귀의 턱뼈를 내려놓고, 내가 주는 생명수를 마시지 않으면 너는 죽은 존재일 뿐이다.”라는 강한 메시지 입니다.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압제에서 벗어납니다, 20년 동안(20절)! 그러나, 삼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잔, 생명수를 거절했습니다. 다시, ‘들릴라의 술잔’에 취했습니다.
우리 손에 들린 ‘나귀 턱뼈’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찮은 무기이건, 대단한 무기이건 상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흐르는 생명수가 없으면 심히 목말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제 자신입니다.’라는 겸허한 영적 고백, 그에 합당한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1~14절을 함께 묵상하십시오. 삼손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입니다.)
이런 영적 고백과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성령에 붙들려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그 증거는 우리의 삶의 열매로 드러나게 될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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