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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12월 14일 2020년 월요일 묵상

본문: 역대하 32장 24~33절

1.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멸망 길을 향해가는 인간이 생명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 붙들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땅에서 누리고 받은 축복이 아무리 크고 대단해도 ‘십자가’를 놓치는 순간 죄성에 기울어진 인간은 넘어지고 맙니다.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축복은 결코 영원하고 절대적인 십자가 구원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29~31장에 기록된 ‘히스기야의 개혁’을 지나, 32장 1~24절의 ‘히스기야의 기도’, 앗수르의 대군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물리친 사건, 중병에 들었으나 기도함으로 회복된 사건은 그의 인생의 정점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그렇게 해석하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오늘 읽으신 본문은 안타까움을 더 합니다. 열왕기 20장과 이사야 38~39장을 함께 읽으면 히스기야 왕의 마음 자세가 더 느껴집니다.

나아가서 다윗 왕 이후 최고의 왕으로 존경받으며, 많은 축복을 누린 것이 과연 좋은 것이었는가?’라는 질문마저 생기게 합니다.

2. 오늘 본문을 볼 때 뻔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24~26절을 23절의 축복과 27~30절의 더 큰 축복 사이에 잠시 방황(?)한 것으로 보면 안 됩니다.

특히, ‘회개하면 더 큰 축복을 주신다.’라는 식으로 연결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회개의 목적도 축복으로 연결 짓는 세속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현세(現世)의 축복’과 ‘내세(來世)의 축복’을 위한 지렛대 정도로 여기는 것입니다.

25절에 히스기야 왕이 ‘받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진짜 히스기야와 남유다 백성들에게 필요했던 은혜가 무엇입니까? 23절인가요? 아니면, 27~30절입니까? 아닙니다.

히스기야 왕과 남유다 백성이 받은 은혜는 ‘다시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붙들고 다시 속죄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유월절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회복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이 히스기야의 삶, 남유다 백성들의 삶에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이 내 삶에 임할 때 땅의 것들이 채워지는 이런 저런 보이는 복이 따라옵니다. 그런 것을 거절하고, 거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나의 필요와 노력에 따라 채워지는 것이 분명 있습니다.

다만, 거기에 마음 빼앗기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의 많고 적음 때문에 누군가를 평가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가치를 땅의 것들로 훼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자기 욕망의 충족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포장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와 남유다에 임한 눈에 보이는 축복과 생명 연장은 ‘너는 갚을 수 없는 대속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네 생명의 주인은 나 여호와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3. 히스기야 왕에게 필요했던 마음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받은 대속의 은혜, 다시 회복된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에 비하면 내가 땅에서 누리는 27~30절의 축복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입니다.”라는 간절한 마음 말입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이 마음 붙드는 것이 생명보다 귀한 것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물론, ‘부스러기’에 감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스러기’가 귀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상 너머에 계신 주인에게 시선이 고정되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아직도 ‘회개하니 27~30절의 더 큰 축복을 받았다.’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면 성경을 잘못 읽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가치와 전혀 상관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31절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중심, 속사람의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 저울에 달아 보십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내 아들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느냐?”를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지 다시 진지한 질문이 필요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영혼의 대답이 하나님의 마음에 닿게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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