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역대하 30장 13~27절
1. 한절 한절 하나님 말씀 따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며, 다행인지 더 깊이 깨닫습니다.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의 가치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기록된 성경 말씀에 붙들린 삶처럼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간사하고, 나약하고, 숨기기에 빠른 나의 심령이 말씀의 빛으로 비춰지는 것처럼 감사한 것이 없습니다.
역대하 29장에서 시작되는 ‘히스기야 왕’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더더욱 이런 감사, 확신, 은혜를 느낍니다.
히스기야는 참 묵묵히, 세밀하게, 확실하게, 신속하게, 조심스럽게, 무너진 ‘여호와 하나님의 율례(율법과 말씀)’를 회복시킵니다. 중단된 ‘제사, 대속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유일한 죄사함의 제사’를 회복시킵니다. ‘유월절’을 비롯한 잊혀진, 사라진, 무시당한 절기(節期)들을 회복시켜 나갑니다.
오늘 말씀은 ‘무교절(無酵節, Unleavened bread)’의 회복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과 함께 지키는 절기로 보시면 됩니다. 유월절을 지킨 이후 바로 연결되는 절기입니다. 유대인의 월력으로 ‘니산월(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낸 후 15일부터 연 이어 시작해서 7일간 지킵니다.
무교절은 출애굽의 고난을 기념하기 위해 정한 것입니다. 7일 동안 쓴나물과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구워 먹으며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건져 내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조상들의 신앙’을 기억하는 기간입니다. (출12:17, 신16:3)
본문 23~27절은 ‘무교절’ 기간을 연장(7일+7일)하여 지킨 것입니다. 이것은 감격과 감사 때문입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첫번째 7일은 고난과 기억이라는 ‘무교절의 의미’에 집중하여 지켰을 것입니다. 두번째 7일은 축제의 성격이 강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예배, 절기 등이 회복된 것이 너무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의논한 뒤 축제의 성격이 강한 ‘특별 절기’를 지켰습니다.
25~27절을 읽으며 같은 마음이 전달됩니다. 그 당시 기뻐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역대기의 기록’을 읽은 우리도 ‘다윗과 솔로몬’ 이후 이런 기쁨의 기록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와 여러분, ‘뉴저지 주님의 교회’를 통해 무너진 모든 것들이 회복되는 ‘큰 기쁨’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내내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2. 이 묵상과 기도 가운데 시선이 고정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14절입니다. 목회자라는 말을 듣는 제 자신이 두려움으로 대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의 원인을 ‘왕’에게만 넘겨서는 안 됩니다. 이유가 어떻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도 동조했습니다.
이 말씀을 대하면서 제가 ‘지도자(?)’라는 말을 듣는 곳에서의 모든 문제는 제 자신에게 있음 깨닫습니다. 제 가정과 ‘뉴저지 주님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의 책임은 저에게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문장을 마음으로 쓰는 것이 이렇게 힘들지 몰랐습니다…)
진정한 회복은 ‘여호사밧 대제사장(역대하 24장)’과 ‘히스기야 왕(역대하 28~31장)’이 함께 회개하고 돌이킬 때 진정한 회복이 있습니다. 당연히 백성들의 순종도 따라야 합니다.
‘누가 먼저 할 것인가? 누가 더 나은가, 나쁜가?’라는 것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내가 먼저!’를 깨닫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진정한 ‘대속의 은혜’를 깨달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십자가 앞에 달려가 엎드려 자기를 돌아보며,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에 관해서는 ‘양보하다(yield)’라는 단어를 지우십시오. ‘연기(postpone)’라는 단어도 삭제하십시오. 이때는 긍정적인 이기심을 발동해야 합니다.
제 주변의 모든 문제 앞에 제가 가장 먼저 엎드려 기도하며, 긍휼과 은혜를 구할 때 비로소 해결이 시작됨을 믿습니다.
3. ‘히스기야 왕’은 위와 같은 태도를 가졌었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유월절 날짜를 지킬 수 없었을 때 ‘정결하지 못한 제사장들, 여전히 우왕좌왕하는 레위인들’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과 도울 일을 찾아서 조용히 진행시켰습니다. 역대하 29~30장이 다 그런 기록입니다. 결국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발견하고 실행합니다. 이것이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15~17절)
‘하나님의 은혜가 위로부터 흘러내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위로부터 회개와 돌이킴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18~19절을 읽어보십시오.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 그래서 규례를 어긴 그들!을 향해 ‘종교적 옳음, 상식의 옳음’을 내세운 비판과 비난이 아니라, ‘하나님께 긍휼을 입은 사람의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10~12절을 배경으로 읽으면 더 다가옵니다. ‘유월절을 함께 지키자는 초청’을 조롱한 ‘북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무지하고,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찾아온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대합니다. 왜냐면, 나도 그 은혜를 입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기도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이런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 흐르기를 기도합니다. 함께 큰 기쁨으로 베푸신 십자가 사랑을 찬양하고 예배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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