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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12월 08일 2020년 화요일 묵상

본문: 역대하 29장 1~19절


1. 역대하 29장은 ‘히스기야 왕’에 대한 기록입니다. 남유다의 왕 중에서 ‘다윗, 솔로몬 왕’을 제외하고 가장 익숙한 왕일 것입니다. 좋은 왕으로 평가됩니다.

2절의 “그의 조상 다윗의 행실과 같이…”라는 표현은 남유다의 왕에겐 최고의 칭찬입니다. 반대로 ‘(북)이스라엘의 왕들의 길’ 혹은 ‘아합의 길’이라는 평가는 매우 부정적인 것입니다.

읽어 보신 것처럼 ‘히스기야 왕’은 아버지 ‘아하스’왕이 저질러 놓은 수많은 악행과 타락, 우상숭배를 되돌려 놓습니다. 정화하고, 회복시키고, 바로 세웁니다.

그가 성전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행한 과정을 보면, 제의적인 요소에 기반한 외적인 부분이 강조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초점을 놓치면 안 됩니다.

이런 말씀을 대하면서 ‘새로운 종교 시스템, 프로그램, 훈련 도입’ 같은 것으로 흘러가면 안 됩니다. 목회자 혹은 교회에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 ‘새 것’을 추구하기 위해 정당성을 주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남유다 백성(자신 포함)들 사이에 무너진 ‘인격적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성전 정화’를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관계를 깨뜨린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단 한번도 ‘언약, 약속’을 깨뜨리신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세워진 ‘언약’을 깨뜨린 것은 아담입니다. 속도 없으신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찾아오셔서 ‘언약’을 세우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역사, 구속(救贖 redemption)사의 역사는 ‘인간은 깨뜨리고, 하나님은 다시 세우시고’의 반복입니다.

‘히스기야’는 이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리고, 등을 진’ 남유다의 잘못을 알았습니다. (6절)

그리고 그 일에 앞장선 것이 자기 아버지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앞장 서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하스가 얻고 싶은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주시지 않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다른 신들처럼 욕망을 채워 주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껄끄러운 것은 죄인임을 깨닫고 낮은 마음,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붙들고 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승리를 주는 아람, 앗수르의 우상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겠습니까? 종교유희와 욕구를 채워주는 ‘이방 제사’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3. ‘히스기야’는 포기합니다. 아버지가 쫓아갔던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환상과 허망함을 깨닫고 버렸습니다. 8~9절을 통해 ‘히스기야’가 과거 아버지 ‘아하스 왕’이 전쟁에 패한 원인, 공격당한 원인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히스기야’는 이방신의 음흉한 얼굴을 구하기 위한 타락한 종교행위를 멈춥니다. 마음의 중심을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에 붙들어 맸습니다.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이 자신과 남유다를 향하게 하기 위해 성전을 깨끗하게 합니다.

방치된 폐건물을 상상해 보십시오. 성전이 딱 그랬습니다. 아하스 통치 16년 동안 ‘지성소(至聖所 Most Holy Place)’의 문을 닫았습니다. 하나님이 껄끄러워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여호와의 궤’가 있는 지성소의 문은 닫아버린 뒤 다른 성전의 공간은 우상 숭배의 공간으로 바꿨습니다. 죄를 고백하며 ‘나 대신 드린 제물’을 불태우는 번제, 속죄제 등을 위한 모든 기구들도 치워버렸습니다. 그 대신 종교 쾌락을 추구하는 이방 제사의 도구들로 채워 놓았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대속의 은혜’ 안에 있는 ‘구원의 언약, 생명의 언약’을 다시 붙들었습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은 건물이 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모임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각 사람이,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는 대속의 은혜 언약’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나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죽음보다 더 강하게 붙드는 것입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이기신 예수님께 사로잡히고, 붙들리는 것입니다!

좀 이기적인 것 같지만… 다른 사람, 심지어 내 혈육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내가 먼저 ‘십자가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이후… 놀라운 생명, 회복, 구원의 역사는 반드시 흘러가게 됩니다. 흐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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