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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12월 07일 2020년 월요일 묵상

본문: 역대하 28장 16~27절

1. 주말에 살펴보신 ‘역대하 26, 27장’은 남유다의 ‘웃시야, 요담 왕’에 관한 기록이었습니다. 사람인 제가 다른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말씀하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겸허하고 낮은 마음으로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역대하 28장의 주인공?인 ‘아하스 왕’은 안타깝게도 시작부터 절망적입니다. 대놓고 우상을 섬깁니다.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인신제사를 행합니다. 아람, 북이스라엘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인 16~21절을 보면 ‘에돔’과 ‘블레셋’이 쳐들어옵니다. 이들의 침략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하며 긍휼과 자비를 구하지 않습니다. ‘앗수르 왕’에게 도와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습니까? 앗수르 왕은 도리어 남유다를 공격합니다.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갖다 바친 모든 재물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21절) 오히려 갖다 준 재물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약탈하려는 마음이 ‘앗수르 왕’에게 솟아올랐을 것입니다.


2. ‘아하스 왕’의 어리석은 행동이 여기서 멈췄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의 범죄와 멸망길로 스스로 걸어가는 어리석은 행동은 더해갑니다. 더 심각해 집니다.

예전에 자신을 공격해왔던 ‘아람’의 신에게 제사를 합니다. 긍정적 의미의 제사가 아닙니다. 굿을 한 겁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람의 ‘베가 왕’이 남유다의 군대 12만 명을 하루에 죽이는 걸 보고 착각한 것입니다. (역대하28장 6절) 고대의 전쟁은 전쟁 당사국의 신들이 싸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람의 신’이 나름 센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 주변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가 아람 군대이다. 그건 다메섹 (아람의 수도)이 섬기는 신이 강력하기 때문일 거야. 내가 아람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날 도와주겠지”라는 어리석은 생각에 스스로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그 신” 바로, ‘아람의 신’이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합니다. (23절) 24~25절을 읽으면 이런 탄식이 저절로 나옵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대체 저게 무슨 짓이지?”라는 한탄이 나옵니다.


3. 하지만, 우리 고민해야 합니다. ‘아하스’의 모습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야 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은 실수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결정적일 때 자기 본성이 튀어나옵니다. 자아실현을 위해 신적 존재에게 의지하려는 깊은 죄성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멈춰야 합니다. 그쯤에서 중단해야 합니다. 이쯤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더 이상 멀리 가면 안 됩니다.

‘아하스’는 단 한번도 ‘영적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습니다. 방향을 바꾸지도 않았습니다. ‘영적 조향 장치(steering wheel)’을 한번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 심령에 찔림을 주실 때 멈추십시오. 멈추는 것에서 나아가 방향을 바꾸십시오. 방향을 바꾸기만 하지 마시고 한 걸음이라도 바뀐 방향으로 걸어가십시오.

멈추고, 바꾸고,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을 매일 매순간 반복하십시오. 주님과 같이 인생의 길을 간다는 것, 한걸음 한걸음 간다는 것은 ‘바뀐 방향’으로, ‘십자가의 방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한 생명의 길을 한 걸음씩 걷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걸어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걸어가는 복된 인생 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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