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작성자 사진Hyung Yun

12월 02일 2020년 수요일 묵상

본문: 역대하 24장 17~27절


1. 요아스 왕의 마지막은 안타까움 그 자체입니다.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붙든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요아스 왕’이 처음부터 종교생활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를 이해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왕으로 쓰임 받는다’는 생각이 지나쳐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로 하나님의 은혜’를 착각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추측을 해봅니다.

부정적으로 변한 ‘요아스 왕’을 보면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 자신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십자가 복음은 죄악된 자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아의 본성과 반대로 살기 위해 십자가를 택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self-denial)’을 위해 나 대신 죽으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이것을 놓치면, 이것을 소홀히 하면, 누구도 예외 없이 ‘요아스 왕이 걸어간 길’가게 됩니다.


2. ‘요아스 왕’은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뒤 ‘유다 방백들(백성의 지도자들)’의 말을 듣습니다. 그들의 조언을 듣습니다. (7절)

물론, 이런 요아스의 행동에 ‘대제사장’이라는 종교직분의 권위를 강조하는 해석으로 흘러서는 안 됩니다. 은근슬쩍 이런 말씀에 기대려는 ‘종교지도자적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왜 ‘요아스 왕’은 유다 방백들의 말을 들었을까요? 그 옛날 ‘르호보암’이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 사람들의 말을 들은 것과 같은 실수를 저질렀을까요?

그 이유는 ‘부추김’ 때문입니다. 그들이 ‘요아스 왕’에게 절한 뒤 무슨 말을 했을까요? 분명히 추켜세웠을 것입니다. 종교적 칭찬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전을 이렇게 멋지게 수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왕을 쓰십니다. 이제 대제사장 여호야다도 죽었으니, 왕의 통치를 널리 펴실 때가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네,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버려야 할 마음이 ‘신앙 좋다. 믿음 좋다. 기도 많이 한다. 축복받았다. 등등’의 종교적인 칭찬과 인정 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이런 마음이 깊은 내면에 깔려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가장 깊이 뿌리 박힌 사람이 제 자신입니다. 그 깊숙한 내면이 부추김 당하기 위해 목회자라면 딱 떠오르는 이런 저런 좋은 말, 칭찬, 평가에 목 말라 하는 사람이 접니다. 여러분은 이정도는 아니지만, 나에 대한 어떤 칭찬과 평가, 좋은 말 등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으십니까? 전혀 그런 것이 없을 수 없지만, 지나친 것은 아닌지요…


3. 하나님은 요아스 왕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그래도 듣지 않자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통해 돌이킬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결국 그를 죽여버립니다. 자기가 수리한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입니다. (19~21절)

비극 중의 비극입니다. 이것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인 것이 아닙니다. ‘여호야다’를 죽인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자신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정성을 다하여 고치고, 세우고, 예배 드린 ‘여호와의 전’에서 죽였습니다. 21절의 ‘함께 꾀하고, 돌로 쳐 죽였다는 것’은 철저한 계획 살인이었다는 말입니다.

왕이 되어 곁에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를 돌로 쳐버릴 권세가 있었던 ‘요아스 왕’이 저지른 행동을 통해 ‘요아스 왕의 본심’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요아스 왕의 죄악된 본성 끝에 맞닿아 있는 인간 죄성의 본질, 자아실현의 본질을 두려울 만큼 직시해보십시오.

인간 본성을 직시하려면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십자가에 붙들림(못박힘)과 성령의 비춰주심입니다.

마치, 깊고 어두운 수직 동굴을 밧줄(십자가)에 의지하여 랜턴의 밝은 빛(성령의 비추심)으로 비춰야만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그걸 왜 그렇게 원하는지, 내가 그걸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내가 그걸 왜 그렇게 이루고 싶어 하는지…” 우리 심령의 저 깊은 본성을 십자가 앞에 엎드려,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물으십시오. 아프게 지적하실 때 전인격을 드리며 회개하고 돌이키십시오.

이것 만큼 어려운 것이 없지만, 이것 만큼 복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 만이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길인 줄 믿습니다.

이 어려운 것을 내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의 능력으로 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조회수 16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