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역대하 19장 4~11절
1. 오늘 본문은 ‘여호사밧 왕의 개혁’에 관한 기록입니다.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여호사밧은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합니다. 500여년 전 있었던 ‘루터의 종교개혁’을 연상시키듯 여호사밧은 최선을 다해 무너지고 왜곡된 신앙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합니다. 종교적인 부분 외에 사법제도에 대한 개혁(6~10절)도 이루어집니다.
19장에 기록된 그의 개혁은 회개와 돌이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7장에서 우상을 척결하는 등의 개혁과 그로 말미암은 축복에 취했던 것인지 그는 18장에서 아합 왕과의 혼인 및 동맹이라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길르앗 라못 전투의 패배와 아합의 죽음’은 여호사밧에게 영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선견자 예후’를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돌이킨 것입니다. ‘밧세바 사건’을 지적하는 ‘선지자 나단’의 말을 듣고 회개한 다윗이 떠오릅니다. 이런 것이 진정으로 ‘다윗의 길’로 행한 것입니다.
2. 여호사밧은 직접 개혁을 챙깁니다. 4절의 기록을 보면 그의 개혁이 얼마나 광범위하면서 동시에 상세하게 진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브엘세바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는 남유다 영토 전체를 말합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와 같은 표현 방식입니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권면했습니다.
특히, “다시 나가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 전에도 이런 식의 개혁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유추해보면 17장의 개혁은 개혁으로 말미암은 어떤 영적 결과와 그 결과로 인한 ‘눈에 보이는 축복’이 역설적이게도 개혁을 중단하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18장의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개혁’은 결코 멈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혁이라는 거창한 단어보다 회개와 돌이킴은 결코 멈출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회개와 돌이킴’으로 인해 따라오는 이런저런 결과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라는 스스로의 착각에 빠지면 안 됩니다.
여호사밧은 다시 나갔습니다. 개혁의 슬로건을 들고 나간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돌아오라’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왕이 수도 예루살렘을 떠나 직접 곳곳을 다니며, 사람을 만나 “여러분, 나처럼 다시 회개하고 돌이킵시다.”라는 고백과 증거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것이 진짜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가 내려놓고, 돌이킨 증거와 고백없이 아무리 나가서 말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진정한 회개의 증거, 고백, 삶이 있으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내가 못 박힌 십자가’를 향해 옵니다. 저 사람을 변화시킨 예수님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찾아옵니다.
3. 여호사밧의 인생 전체가 완전했던 것은 아닙니다. 회개와 돌이킴 이후 그 어떤 실수도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17~20장에 기록된 여호사밧 왕의 기록은 선별된 기록입니다. 모든 것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삶은 ‘왔다 갔다, 오르락 내리락’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신 이유가 있습니다. 딱 한가지입니다. 어제 본문이었던 3절입니다.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입니다.
‘찾다’로 번역할 수 있는 히브리어 ‘다라쉬(darsh)’는 원하거나 어떤 것을 찾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것이 없으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찾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찾는 것입니다.
3절에 대입해본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세라 목상들보다 더 많은 축복을 주는 신적 존재라서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찾은 것입니다. 뭘 주시고, 안 주시고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대속의 은혜 없으면 난 죽는다’는 절박함으로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처음 길’로 행했던 여호사밧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순수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랐던 다윗의 처음 마음을 기억하신 것처럼 여호사밧의 처음 마음, 그 순수함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악함과 실수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순전하고 순수했던 그 때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았던 순전했던 우리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우리 자신과 교회, 주변의 부흥과 변화는 엉뚱한 것에 기울어진 내 마음이 십자가에 다시 붙들려 ‘예수님의 순전함’으로 회복되고 채워지는 것에서 출발하게 될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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