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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11월 17일 2020년 화요일 묵상

본문: 역대하 14장 2~15절


1. 역대하14~16장은 남유다의 ‘아사’왕에 대한 기록입니다. 아사 왕은 남유다 최초의 개혁 왕이라고 말합니다.

솔로몬 왕의 화려함 뒤에 숨은 이방종교의 영향으로 남유다는 급속한 종교적 타락으로 흘러갑니다. 솔로몬은 정치적 안녕과 경제적 번영을 위해 주변국가들의 왕실과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그렇게 1000여명에 이르는 솔로몬의 처첩들이 들여온 이방 종교와 우상 숭배는 걷잡을 수 없이 일반 백성들에게도 퍼져 나갔습니다.

이것은 표면적인 종교적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마저 우상을 숭배하듯 섬겼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타종교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남유다의 왕들, 종교지도자들, 백성들은 ‘자아실현을 위한 축복’을 주는 존재라면 그 어떤 것도 버리지 않고 섬긴 것입니다.

2. 남유다 전역에 얼마나 심각하게 우상숭배가 만연했는지는 3절과 5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아사 왕’이 얼마나 철저하게 우상숭배를 하던 장소와 제단을 철거, 제거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6~7절을 보면 ‘아사 왕’이 성읍을 보수하고, 건축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전 왕들(아비야, 르호보암) 때에 있었던 ‘애굽,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무너지고 황폐화된 성읍들을 보수하거나 다시 건축한 것입니다. 그리고 8절을 통해 알 수 있는 듯이 그는 국방을 튼튼히 하기위해 군대도 재정비하였습니다.

이런 준비 가운데에 9~15절에 기록된 ‘구스 사람 세라’가 남유다를 침입했습니다. ‘구스’는 오늘날 ‘에티오피아’와 ‘수단’ 주변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던 고대 국가입니다. ‘구스’가 강성할 때는 ‘나일강’을 유역을 따라 ‘이집트(애굽)’을 점령하여 왕조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9절에 기록된 엄청난 병력은 과장이 아닙니다. 오십 팔만 명에 이르는 남유다의 병력도 많았지만, 거의 두배에 이르는 구스의 침략군과 그들이 거느리고 온 삼백 대의 병거는 가히 최강의 군대였습니다.


3.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보여준 ‘아사 왕’의 태도는 놀랍습니다. 11절에 기록된 그의 기도는 우리 마음을 울립니다.

오십 팔만 명의 군대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떠한 종교 의식, 종교인들의 도움도 받지 않습니다. 11절은 분명, ‘아사 왕’의 기도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려는 ‘아사 왕’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아사 왕’의 이 고백을 한번만 더 곱씹어 보십시오. 너무 단순하게 “아사 왕이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했구나. 나도 어렵고 힘든 일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해야겠다. 기도해야겠다.”라는 기계적 반응을 내려놓고 다시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아사 왕’의 전적인 의지, 수 많은 병사들, ‘큰 용사’라고 일컬어지는 ‘오십 팔만 명의 군사들’ 앞에서 저렇게 기도하는 ‘아사 왕’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일단은 그가 보유한 군대를 이용해서 전쟁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전투를 치르다 전세가 불리하거나, 뭔가 작전대로 잘 안 될 때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식의 태도가 ‘왕의 체면’도 세워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용맹함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왜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까요? 그 이유는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고, 적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당장 가진 것, 자신 있는 방법’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결정하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자기 힘으로 안 될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어쩌면 찾는 시늉을 합니다. 보고 들은 것은 있어서 ‘기도하는 척, 맡기는 척, 의지하는 척’합니다.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아사 왕’이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평소에, 항상, 작은 일에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3~7절을 행한 것은 단순한 ‘왕의 권력과 힘’으로 실행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면, 우상숭배는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겼습니다. 둘 다 섬김으로 오는 ‘종교적, 물질적 축복’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 왕’은 이미 하나만 택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택했습니다.

우리는 늘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평소에, 작은 일에, 십자가의 길을 택하고 있는가? 사람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택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하나님 외에 도와줄 이가 없고,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그대로 결정하고, 행하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삶의 작은 일에서 내가 의지하는 그것들을 잘라내는 연습과 훈련, 실천 없이는 불가능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갑자기 등장하신 슈퍼스타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향하시기 위해 사람이 걷는 모든 인생의 길을 걸으시면서 매 순간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며 자신을 내려놓으셨습니다.

매순간 우리의 영적 결단이 쌓여 마침내 가장 큰 믿음의 결단으로 드러나게 될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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