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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11월 11일 2021년 목요일 묵상

본문: 사사기 5장 19~31절


1. 사사기 5장, 드보라의 노래 후반부입니다. 어제 아침과 수요예배 때 나눈 묵상이 ‘드보라의 노래’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이었습니다. (하나의 큰 주제가 명확한 시를 두 번에 걸쳐 나눈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드보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말 그대로 기적! 철병거가 휘젖고 다니는 전쟁터에서 칼 한번 휘두르지 않고 이긴 승리! 초자연적 현상(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비와 번개)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기적의 승리(20~22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이스라엘은 나를 버리면, 나를 떠나면 안 된다. 원래 영원한 멸망을 향해 걸어가던 너희를 나의 전적인 선택과 은혜로 돌이켜 세웠기 때문이다. 내가 베푼 대속의 은혜, 그 은혜언약 안에 머물러야 한다. 진정한 승리! 구원의 승리!는 나 여호와로 말미암는다.”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드보라를 통해 기록하신 것입니다. 그녀의 전인격을 담은 찬양(노래, 시)로 기록해 놓은 것이 ‘사사기 5장’입니다.


2. 그리고 ‘시스라’를 다시 묵상해야 합니다. ‘기손 강’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다, 결국 병거에서 내려 터벅터벅 걸어간 ‘시스라’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입니다. 이것이 믿어지고, 이것이 인정되고, 이것이 고백 된다면 ‘십자가’로 돌이키는 발걸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 높아진 내 머리를 십자가 아래에 파묻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장막, 그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사는 길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이런 내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을 통해 십자가 은혜에 이끌려 거기에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히기 위해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이 영적 고뇌를 아는 사람은 성경을 펼쳐 드는 그 순간, 아플 수 있음에 눈을 찡그릴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내 안에 어둠이 성경을 멀리하게 한다는 것도 느낍니다.

그러나, 이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붙들려 말씀을 펼쳐 듭니다. 그 말씀으로 내 심령을 하나 하나 드러내시는 성령의 비추심에 나를 맡기게 됩니다.


3. 저의 한계 속에서 자꾸만 설교라는 목회자의 종교적 행위를 하기 위해 성경을 읽을 때가 많습니다. 각 종 자료를 참고합니다. 원어를 살핍니다. 성경 기록의 문학적 장치를 찾아냅니다. 그러나, 결국 말씀 속에서 제가 못 박힌 십자가를 발견하지 못하면 입을 열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드보라의 노래’ 그 후반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시문학적 기법은 말뚝으로 ‘시스라’를 죽인 ‘야엘’과 죽은 아들을 기다리는 ‘시스라의 어머니’를 대비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과 하나님을 대적하다 멸망한 사람을 극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으로 이해할 뻔했습니다.

그 즉시 책상 앞에 머리를 파묻었습니다.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제 타락한 본성의 흐름대로 ‘쓰임 받는 사람,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떨쳐냈습니다.


4. 말씀이 또 다시 다가왔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31절)라는 말씀 앞에 당당하게 설수 없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왜냐면, 성경 말씀 그대로 저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베소서 2장1~7절)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딤전 13절)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의 제가 땅에서 덮어쓴 껍데기 신분(목회자?)로 살아간다고 해서 제 본질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저를 가리고, 덮어 주시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 자신임을 똑똑히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5. 저와 여러분, 우리는 감히 “주를 사랑하는 자”에 속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를! 여호와 하나님을! 성부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입니다. 그 믿음 조차 위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선물, 기적, 은혜 등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이 안 되는 불쌍히 여겨 주심을 받은 존재들일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거기서 흐르는 긍휼에 가려진 바 된 존재들일 뿐입니다.

만약, 이런 영혼의 태도가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박혀 있지 않으면 우린 가짜입니다. 그 영혼의 태도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원수처럼 행하던 나는 십자가에서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의 죽음,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사십니다. 우리가 새생명으로 살아가는 매일 매순간은 이 영적 죽음과 부활이 이어진 삶이어야 합니다.

내가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가 힘있게 돋음 같이 나를 장악하고 비추시는 삶을 살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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