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역대하 8장 17~9장 12절
1. 역대하 8장 17~9장 28절은 말 그대로 ‘솔로몬의 번성함, 부유함, 영화로움, 지혜로움’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런 솔로몬의 명성은 이스라엘을 넘어 주변국에 퍼집니다.
오늘 본문에 두로 왕 후람과의 교역, 스바 여왕의 방문으로 증명됩니다. 오늘날 레바논 지역에 위치한 ‘두로’는 고대 지중해 연안 무역으로 유명한 국가였습니다. ‘스바 여왕’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구스(현, 에티오피아)의 여왕’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후람’과 ‘스바 여왕’을 통해 솔로몬 재임 기간 이스라엘이 고대 근동에서 어떤 위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7절의 ‘에시온게벨’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시온게벨’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스라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항구도시’입니다. 오늘날에는 ‘이집트(애굽), 이스라엘, 요르단(에돔)’의 국경을 모두 맞대고 있는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홍해를 통해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이집트까지 나갈 수 있습니다.
과거 ‘수에즈 운하’가 없었던 시절 ‘지중해’에서 ‘홍해’ 및 ‘인도양’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에시온게벨’을 통하는 것이 유일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간다는 것은 당시로는 불가능이었습니다.)
따라서 ‘지중해 연안 국가’였던 ‘두로’가 해상로를 통해 ‘구스(에티오피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지역 등과 교역을 하기 위해서는 ‘솔로몬 왕’과 친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야 ‘두로’의 무역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스바의 여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굽이라는 걸림돌 없이 고대 해상 교역 강국이었던 ‘두로’와 무역관계를 지속,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솔로몬의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후람, 스바의 여왕의 방문과 관련해서 더 많은 역사적, 지리적, 정치적 배경이 있지만, 생략합니다.)
2. 이런 점을 냉정히 인정하며 오늘 본문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후람’과 ‘스바 여왕’의 본심이 조금이라도 보입니다. 그들이 ‘솔로몬’을 칭찬한 이유, 그들이 생각하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알 수 있습니다.
3~8절의 기록을 다시 보십시오. 여기서 ‘스바의 여왕’이 말한 것이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의미의 고백인가요? 8절에서 ‘당신의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한다’는 말이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대속의 은혜’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한다는 말일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그냥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 등을 본 것입니다. 최신식 건축물, 최고수준의 시설을 본 것입니다. 그 시설들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층계를 보고 정신이 황홀하여’라고 기록할 정도입니다.
결국,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에게 보이는 것들을 베풀어 준 ‘여호와’라고 불리는 신적 존재를 찬양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대속의 은혜를 통한 죄인의 용서와 회복, 구원을 송축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바의 여왕’을 통해 에티오피아에 ‘여호와 신앙’이 전해졌고,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 집사’가 ‘에티오피아(구스)의 내시, 간다게’에게 예수님을 전한 게 된 것이 ‘스바의 여왕’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맞습니다. 그럴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에티오피아 내시, 간다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다시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종교적 전통이 몇 년인가? 얼마나 높은 사람이 믿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믿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3. 솔로몬은 정말 지혜가 있는 사람이 맞습니다. 시대를 잘 타고 난 것도 사실입니다. 국제 관계 상 전통의 애굽이 몰락하고, 신흥 강국인 ‘앗수르, 바벨론’이 등장하지 않는 기간 동안 왕위에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면 다 됩니다.
그런데, 은혜라고 덮어놓고 말하고 싶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면, 때로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주심’을 가지고 자기가 ‘했던 일, 하고 있는 일, 하려는 일’에 신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의 축복이다.’라며 자기 맘대로 휘두르는 수단으로 ‘은혜’라는 단어를 이용합니다.
솔로몬은 분명 중계무역을 했습니다. ‘두로와 스바’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육상, 해상 교역로’를 제공하여 막대한 돈을 벌었습니다. (역대하 8장 17절)
또한 12절의 “스바 여왕이 가져온 대로 답례하고”라는 것을 봤을 때, 스바의 여왕은 조공을 들고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무역을 하러 온 것입니다. 국제 통용화폐가 없었기에 물물교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빌(남서 아라비아 혹은 아프리카의 한 지역으로 추정)’에서 생산된 최고품질의 금을 화폐 대신 사용한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에 대한 우상화를 버리면, 정말 많은 것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에게 최고의 복을 부으시는 신적 존재로 이해하지 않게 됩니다. 기계적, 계산적 종교 헌신을 바탕으로 현세적, 물질적 종교 보상을 바라는 신앙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솔로몬이 받은 축복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받은 축복을 바라보는 ‘사람의 본 마음’이 중요할 뿐입니다. 어떤 일이 생기고, 어떤 것이 앞에 있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본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로 모든 것을 헤아리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피하고 싶은 그 마음을 다시 예수님께 묶어 두는 것만이 생명 얻는 유일한 길인 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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