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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10월 5일 2021년 화요일 묵상

본문: 출애굽기 26장 1~37절


1. 출애굽기 25~31장은 성막 제작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을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세에게 성막 설계도를 주셨다고 보시면 됩니다. (참고적으로 36장 이후는 주신 설계도 대로 성막을 그대로 만드는 기록입니다.)

읽으신 것처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건축 전문가도 설계도 자체가 아니라, 글로 기록한 규격을 보면서 머리 속으로 그리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성막 모형을 검색하셔서 함께 읽으시면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모세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규격을 말씀해주실 때,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양식’을 보면서 성막의 규격과 모든 것을 기록했습니다. 30절, “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현장 기록인지, 내려와서 기록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뛰어난 기억력을 주셨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영혼에 말씀하신 것, 절대 지어지지 않는 은혜 가운데 성막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을 전달받았습니다.

2. 여기서 중요한 묵상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이라는 종교시설을 모형처럼 만들어 놓고 모세에게 보여주셨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막이라는 어떤 시설물, 그 자체에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을 따라가면 “이집트에 가보니 성막과 똑같이 생긴 종교 시설물이 있더라. 대부분의 고대종교에서 동물 희생 제사를 드렸다.”는 식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게다가 오늘날 ‘교회 건물’을 성막 또는 성전에 비교하며 건물 자체에 대한 숭배로 흐르게 됩니다. 교회 건축의 정당성, 사명감 등을 포장하는데 이런 말씀들을 이용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산에서 보이신 양식(樣式plan, ordinance)”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울 정도의 양식을 보여주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범죄한 인간이 다시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만나주시기 위한 과정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방법입니다.

더 정확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대속의 제물이 되셔서 범죄한 우리를 살리시고, 다시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시는 방법’을 모세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3. 종교, 도덕, 양심 등 그 어떤 것으로도 가릴 수 없는 인간의 범죄타락한 본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 주시는 은혜, 그 가려주시는 은혜 안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은혜가 이미 ‘성막’에 녹아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14절을 보십시오. 다른 것들은 치수를 말한 것이라 복잡해도 14절만큼은 머리 속에 얼마든지 그려볼 수 있습니다.

제가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성령께서 여러분의 심령에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 우리의 삶, 우리의 중심이 무엇으로 덮여야 하는 지 분명해졌습니다.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입니다. 네, 속죄를 위해 흘린 ‘어린 양’의 피를 의미합니다. 대속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4. 제가 의도적으로 “양식(樣式plan, ordinance)”의 진짜 의미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양식”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mishpath’입니다. ‘재판, 옳음, 공평’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세우십니다. 그런데, 범죄한 인간에게 죄값을 치르도록 하시지 않습니다. 내 죄를 대신해 죽는 그 제물의 희생을 받으십니다.

그때! ‘제물을 대신 드리는 범죄한 인간의 마음 상태’는 어때야 할까요? 진짜 위로부터 주시는 용서, 죄사함, 구원의 은혜가 있다면… “자기가 죽는 것보다 더 가슴 찢어지고, 괴롭고, 아파야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이 십자가를 믿는 믿음, 나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본질입니다. 이런 것이 없이 믿음 운운하면 종교행위에 찌든 가망 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지름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분께서 이룬 대속의 은혜를 경험한다는 것을 종교적 관념, 지식, 행위 등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든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내 영혼이 갈갈이 찢기는 실존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찢긴 상태로 있는 줄 알았는데 살리시고, 싸매시고, 회복시키셔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 안에 품으시는 실존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경험한 나에 대한 절망이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과 생명으로 바뀌는 놀라운 영적 경험과 능력이 넘쳐나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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