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애굽기 35장 1~19절
1. 출애굽기 34장 이후는 ‘다시(again)!’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벌어진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픈 일, ‘금송아지 숭배 사건’을 뒤로하고 ‘다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두번째 언약(돌판)은 첫번째 언약(돌판)과 동일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다시 주신 두번째 언약, 두번째 기회를 통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더 깊이, 더 친밀히, 더 명확히, 더 구체적으로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함은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들을 은혜로 덮으셨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주신 궁극의 목적! 그들과 우리를 불러 언약을 체결하신 진짜 이유!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범죄한 인간이 경험하는 참 안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1~3절).
하나님께서는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자아의 욕망과 범죄한 인간 본성 속에 숨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금송아지(우상을 통한 자아 숭배)’를 만들어 섬긴 이스라엘을 노예와 범죄자 취급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진실하심을 따라 하나님 품(성막) 안에서 다시 허락된 안식을 선포하십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2절을 보십시오.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가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지 않고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해 세상의 것을 쫓으면 죽는다. 영원한 멸망길로 내달리게 된다.”입니다.
3. 그렇다면, 3절은 어떻습니까? 안식일에는 음식조차 만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그냥 먹지 않았습니다. 절구에 찧어 굽는 등 기본적인 조리를 했습니다. 물론, 만나를 가지고 미리 만들어 둔 음식은 먹을 수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는 가장 기본적인 요리를 위한 불 조차 피우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이 땅에서 먹고, 입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진정한 안식이 아니라는 것을 일주일 중 단 하루라도 깊이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것의 참 의미, 영원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 참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누리는 안식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함 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매 주일의 예배 가운데 이런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을 통해 공급되는 육체의 것들을 찾아 헤매던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안식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과 나 자신이 만들어 놓은 빠듯함 사이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비집고 들어오시는 ‘안식의 틈’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 ‘안식의 틈’ 사이로 보이는 하늘의 안식,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4. 그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성막 제작’을 위해 드린 것들과 그 드린 것들로 만들 성막의 기구들을 다시 말씀하십니다.
첫번째 때와 똑같습니다. 동일합니다. 하나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우리)에게 다가오시려는, 함께 하시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 때문입니다.
그런데 뭔가 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조금만 앞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드리는 사람들, 만드는 사람들의 심령 상태가 어떤 지 짐작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 종 ‘좋은 것, 값어치 나가는 것, 심지어 기술과 재주 등’을 드릴 때 마음이 어땠을까요? ‘죄송함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이라는 말로도 다할 수 없는 마음’이 공존했을 것입니다. ‘이런 나를 다시 불러 회복시키신 은혜의 무게감’에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드렸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 드린 것들은 ‘금송아지’ 만들 때 다 쏟아붓고 남은 금붙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자아를 숭배하기 위해 다 써버리고 남은 것들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도 기쁘게 받으셔서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성막을 만들도록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브살렐’과 ‘오홀리압’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 자세가 어떤 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또한 성경이 말씀하는 지혜는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인간의 어떤 단어로도 십자가 안에 있는 그 분의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땅에 눈, 코, 귀를 박고 살아가는 나의 고개를 들어 세우셔서 끝까지, 마침내 ‘하늘의 것’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리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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