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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10월 1일 2020년 목요일 묵상

본문: 고린도후서 5장 1~10절


1. 오늘 본문, 5장 1~10절에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상세한 설명입니다. 좀 다르게 말하면, ‘파괴된 겉사람, 내 자아’를 ‘무너져야 할 장막 집’으로 비유합니다. ‘새로운 속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비유합니다.

오늘 본문을 ‘미래의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맞습니다. ‘천국의 소망’, 나아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최종 완성될 구원, 영화’를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현재’를 딛고 서지 않는 ‘미래’는 허망할 뿐입니다. ‘과거’를 기초로 하고, ‘현재’를 디디고 걷지 않는 ‘미래’는 공허할 뿐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역시, 현재적 관점에서 ‘하늘의 영원한 집’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시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2. 성령을 읽을 때, 그 단어 혹은 문법, 수사적 기법을 사용한 저자의 마음, 저자를 통한 성령의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좀 쓸데없는 것 같아도 원어의 의미와 번역의 속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절의 “장막 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할, 벗어야 할 ‘겉사람의 껍데기, 육체’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미래적 육체의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나는 죽었음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십자가 앞에서 매일 매순간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우리가 죽어서 갈 천국, 그곳에서 살 때 거주하는 ‘건축물’따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이런 생각이 있었다면 빨리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을 바로 깨닫게 됩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친히 ‘영원하고 완성된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몇 차례 강조 드린 것처럼 ‘요한복음 1장 14절, 요한복음 2장 19절, 요한계시록 21장 3절’과 연결됩니다. ‘하늘의 성전, 장막’을 ‘건축물, 장소 등’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을 통해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덧입음’과 ‘벗음’입니다. 2절의 ‘탄식하는 이유’는 괴로운 땅을 떠나 ‘하늘의 처소’에 가서 거주하는 수준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처소를 덧입는다’라는 표현을 보십시오. ‘하늘의 처소=예수 그리스도’라야 합당한 표현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음’입니다. 나는 없어지고, 예수님이 나를 완전히 뒤덮어 버림, 장악하심, 다스리심을 의미합니다.

그래야 3절의 의미도 살아납니다. 4절은 더 간절히 다가옵니다. 단순히 괴로운 세상을 벗어나 천국이라는 좋은 곳에 살고 싶은 수준의 구원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4절의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도 보십시오. 정말 강렬한 표현입니다. ‘삼킨 바 되다’ 헬라어 ‘katapino’는 말 그대로 ‘꿀꺽 삼키다. 들이키다.’입니다. 예수님에게 장악되어 굴복 당함을 의미합니다. 이런 것이 기쁜 사람이 진짜 선택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3. 그리고 처음에 말씀 드린 것처럼 ‘덧입음, 삼킨 바 됨’은 미래형이 아닙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헬라어의 독특한 문법체계인 ‘aorist 형’으로 기록했습니다. ‘과거, 현재 심지어 미래’까지 포괄합니다. 왜냐면, 시제보다 그 행동 자체에 더 강조점을 둘 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 행동이 ‘이미 이루어졌고, 이루어져가고,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이루어진 ‘십자가 구원’의 시제와 일치합니다. ‘십자가 안에서 이미 이루어졌고, 이루어져가며, 이루어질 저와 여러분의 구원’ 말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떠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날마다 돌이키며 회개하는 삶을 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그 생명에 삼킨 바 되고, 성령의 은혜에 덧입힌 바 되며, 아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완전히 녹아 없어지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10절이 바로 보이실 것입니다.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몸’은 비록, 여전히 ‘육체’를 가지고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장악 당하여 ‘예수님이 나를 통해 행하신 것’만 남는다는 뜻입니다.

‘무너짐’과 ‘덧입음’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무너짐’의 헬라어 뜻은 ‘녹아 내림’입니다. ‘덧입음’의 헬라어 뜻은 ‘완전히 뒤덮임’입니다.

혹시 예수님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며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 얻고자 하는 것’에 녹아 내리고,뒤덮인 것은 아닙니까?

잠시라도 십자가 묵상하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함께 성령의 은혜를 간구하며 다시 십자가 앞으로 향하십시오. 예수의 보혈에, 그 생명에 삼킨 바 되길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이것 만이 저와 여러분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믿습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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