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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Hyung Yun

10월 12일 2021년 화요일 묵상

본문: 출애굽기 30장 1~16절


1. 출애굽기 30장을 마지막으로 성막과 성막에서 사용할 기구들에 대한 하나님의 제작 설명이 끝납니다.

그 마지막에는 ‘분향단’, ‘물두멍’, ‘각종 향’과 ‘향기나는 기름(향유)’의 제작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생명의 속전(price of life, ransom)’에 관한 규정도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서술적 나열이 아닙니다. 어떤 물리적(위치) 순서를 따라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성막의 물리적 배치를 따라 기록했다면, ‘성막뜰’ 마지막에 위치한 ‘물두멍’의 제작 방법(17~21절)을 먼저 기록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난 뒤‘성막’ 내에 있는 ‘분향단’을 뒤에 기록하고, 연이어 34~37절의 분향단에서 태울 향에 대한 제조법과 22~33절에 기록된 ‘향기나는 기름’의 제조법을 기록하고, 38절의 경고(?)로 기록하는 것이 설명의 물리적 흐름상 잘 어울립니다.

그렇게 마지막에 11~16절에 기록된 ‘생명의 속전’에 관한 규정을 기록하면 ‘성막’과 관련된 영적 흐름에도 잘 맞습니다. ‘속죄의 제사’를 통한 ‘대속의 은혜’와 그것으로 말미암은 ‘구원, 영원한 생명’을 강조한 것으로 마무리 될 수 있습니다.


2. 그런데, 왜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을까요? 물론, 기록의 순서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병적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기록의 순서 속에서도 영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계가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한계가 있는 언어로 기록해야 하기에 그 속에는 고도의 영적 함축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기록자(모세)를 감동하신 성령 하나님의 숨은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평범한 사람인 저도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이렇게 기록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생명의 속전(price of life, ransom)’, 그 영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생명의 속전(price of life, ransom)’의 가치를 기록 속에 담아 내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내일 좀 더 설명하겠습니다. 부족한 것은 수요예배 때…)


3. 그 전에 ‘분향단’의 영적 의미를 살펴봐야 합니다. 무속종교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종교에서 제사 혹은 종교예식과 관련해서 ‘향’을 태우는 관습은 빠지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향’을 태울 때 나는 연기를 통해 ‘그들의 숭배하는 신적 존재 혹은 영혼’이 이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더러운 영적 존재들이 각종 종교행사에 몰려듭니다.) 물리적으로는 그들이 종교행사를 행하는 주변의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분향단’을 만들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연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시는 분이십니까? 성막 안에 고약한 냄새가 가득해서 그러는 걸까요?

아닙니다. ‘분향단’의 진정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분향단’ 조차 ‘속죄의 제물’을 통해 죄인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시는 은혜, 그것을 통해 죄를 완전히 씻으시는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4. ‘분향단’에서 아침, 저녁으로 향을 태움으로 피어 오르는 연기는 ‘속죄의 제사’와 그것을 통해 베풀어지는 ‘대속의 은혜’는 끊이지 않는다는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연기 속에 섞인 ‘향기’는 ‘냄새’ 그 자체를 위해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냄새를 위해 향을 만들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38절)?

인간이 냄새를 위해 ‘향’을 만드는 것과 하나님께서 당신의 임재와 속죄의 제사를 통한 대속의 은혜가 영원하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해 ‘향’을 만들어 태우시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향(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하는 그 모든 것들…)’으로 자신의 고약한 영적 상태와 썩어서 냄새나는 영혼을 가리고, 숨기고, 속이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향’과 ‘연기’를 통해 사랑으로 덮으시고, 안으셔서 죄를 고치십니다. (덮으시고, 안으셔서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고치십니다. 바꾸십니다. 영적 수술을 하십니다!)


5. 위의 내용, ‘분향단’ 속에 담긴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와 속죄’와 관련하여 주목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10절입니다.

10절을 보면 마치 ‘분향단’이 사람처럼 죄를 짓거나, 부정(unclean)하게 되는 것을 일년에 한번 속죄의 피를 발라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속죄할지니”라고 번역된 ‘kaphar’는 ‘배상하고 씻는다’의 의미입니다. 영어의 ‘atonement’입니다.

즉, 일 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속죄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갈 때, ‘분향단’의 네 모퉁이 뿔에 들고 들어가는 그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가 베푸는 ‘대속의 은혜’는 종교 행사 때 잠시 베푸는 것이 아니다. 나의 임재는 너희의 종교 행사 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 매순간 그 은혜를 사모하여 내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자를 덮어서 품을 것이다. 치유하고,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이다. 이 은혜는 나의 품으로 돌이키는 자에게 영원히 베푸는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분향단’과 거기서 피어 오르는 ‘연기와 향’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삶의 현실, 우리 앞에 닥친 그 사건 앞에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십자가, 그 십자가에서 피어 오르는 진정한 속죄의 연기, 그 향기에 붙들린 바 된 승리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은혜가 넘치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지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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